세대차이, 세대공감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질문하는 존재다. 기계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없다. 자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를 인식하고 내가 누구인지를 질문할 수 있는 힘은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기계와 다른 점이고 인간에게 주어진 무한한 가능성이다.”
- 안상헌
“다리 아픈데 여기 와서 앉으소.”
“괜찮습니다.”
도서관 동아리 모임을 다녀오는 길에 문자 한 통. 다른 도서관에서 예약한 책을 가져가라는 메시지다. 집에 회원증을 놓고 와서 할 수 없이 집에 들렀다 환승을 하기 위해 정류장에 온 순간. 눈을 의심했다. 누군가 나무 의자에 다리를 쭉 뻗고 요가 자세로 아무렇지 않게 앉아있는 게 아닌가.
전국이, 세계가 바이러스 초비상인데 외투도 걸치지 않고 스웨터 하나만 입고 양말도 신지 않았다. ‘노숙자인가? 혹시 정신이 좀...’ 그런데 머리는 뽀글뽀글한 파마에 전체적으로는 단정해 보인다. 이 겨울에 춥지도 않으신가? 해바라기를 하고 계시나, 그것도 아니면. 그런 생각으로 빠져들 찰나 마음이 불편했다. 이상한 사람 같아 거리를 두고 버스가 오는 방향을 내내 바라보자니 저런 말씀을 하셨던 거다.
‘아, 사람들과 함께 할수록 더욱더 죄만 짓겠네!’ 딱 이 생각이 들면서 마음은 안 됐는데 가까이 하기는 꺼려지는 상태. 그게 또 양심에 찔려 신경을 안 쓸 수도, 쓰기도 곤란한 복잡한 머릿속.
‘외로우신 걸까?’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시더니 입으로 가져간다. 쓰레기는 어딘가 쑤셔 넣는 눈치. 아마 사탕을 드시며 우물거리시는 듯. 신은 또 어쩌고 대낮에 도대체 저 차림은 뭐고 말 나눌 사람이 그리워 도로를 집 마당 삼아 마실 나온 건지. 대범하지도 무시하지도 못하는 나란 인간의 비겁함과 결벽 아닌 결벽증은 또 어떠한지. 이러고도 무슨 인문학 가르친다고 흉내는... 자아비판으로 이어질 무렵 또 다른 생각이 스친다.
‘그래, 공동체가 필요하구나. 저분도 비슷한 또래나 처지에 속한 친구가 있으면 그 마음을 터놓을 수 있을 텐데. 아무렇지 않게 낯선 이에게 말을 걸고 밖에서 혼자 흥얼거리는 용감무쌍함이 애처롭게 느껴지진 않을 텐데.’
“왔다~”
마치 가족 배웅하듯 버스의 도착에 한 마디 하시는 그분. 마음은 저리고 브런치에 글 쓰고 싶은 영감(?)을 제공해주신다.
나처럼 비겁하지 않고 겁쟁이가 아닌 그 누군가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주기를. 왜 하필 나는 하지 않고 빼놓으면서 남들에게만 기대하는 것이냐 하는 뼈아픈 성찰이 마음을 후벼 판다.
도서관 동아리 모임에서조차 나이 터울이 많은, 어버이 세대들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겉도는 나 자신이 미우면서도 자꾸 마음은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연휴 때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음료 사주시고, 수익이 생겼다고 점심 사주시는 회원들을 보며 또다시 감동하고 나를 질책하며 생각해본다.
기계와 달리 자의식을 가진 나란 존재.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고 있는지. 앎이 삶으로 증명되고 있는지 자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