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실행하라

두려움을 대하는 법

by 윤작가

"두려움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믿을 만한 동맹군이며 두려움이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기의 오랜 경험을 믿으라고 했다."


로맹 가리는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그 소설 속에 나오는 서술자인 '나'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살아간다. 몸을 파는 여성들이 로자 아줌마에게 돈을 내고 자식을 대신 부탁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인 하밀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두려움에 관해 언급하며 저렇게 이야기한다.

지금 내가 그렇다. 동생이 제부에게 폭행을 당하고 우리 집으로 피신해오고, 조카들은 전학해서 새로운 도시에서 살아간다.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동생은 일의 힘듦이나 고상함 따위를 따지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해왔다. 코로나에도 고정된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안정된 직장에 다니면서도 생활비를 제대로, 제때에 주지 않는 그놈 때문에 말이다.

마흔도 되기 전에 아파트 청소, 학원 차량 도우미, 대형 빌딩 주차장, 남자 사우나 목욕탕 청소, 공중 화장실 청소 따위. 환경과 조건을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살려고 몸부림친 내 동생에게 그놈은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했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 간과할 수 없고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우리 가족은 가난하게 살았지만, 돌아가신 아빠의 노름과 빚으로 힘들게 지냈지만, 우리 가족 나름대로의 질서와 사랑과 계획이 있었다. 로자 아줌마처럼 말이다. 집을 구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대학을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등록금을 마련할 돈이 부족했기 때문에. 엄마는 노름으로 월급을 가불 해서 얇아진 월급봉투를 내미는 남편으로 인해 여기저기 외상을 해서 먹거리를 구입하고 우리를 입히고 학교 준비물을 마련했다. 그래서 가장 돈이 적게 드는 방향으로 대학도 결정해야 했다.

고3 담임 선생님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다. 선생님이 보기에 얌전하고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내가 영어교육과에 가면 딱일 거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그러나 엄마는 돈이 가장 적게 드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대학을 결정했다. 여러 군데 면접을 보고 붙었지만 기숙사에 들어갈 필요도 없고, 차 한 번 타면 되는 그런 곳에 있는 대학으로. 이미 아빠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사실 대학이고 뭐고 관심도 없었다. 그냥 가라는 대로, 가면 되는 대로 그렇게 따라다닐 뿐이었고 대충 지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동생은 대학도 가지 못했다. 공부에 큰 뜻이 없었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하고 그것에 마음을 쏟는 아이였다. 그래서 동생은 방송반에 들어갔고 매일 저녁 대중가요를 선정하고 거기에 맞는 글을 적었다. 감성이 워낙 풍부하고 머리가 빨라 방송반 생활을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딱딱한 나와는 다르게, 삶에 경직된 모습이 많았던 나보다 노래를 고르고 감상하는 감각이 뛰어나서 박효신처럼 알앤비에 능한 가수를 좋아했다. 나는 뭐 그런 노래의 맛을 전혀 몰랐지.

그런 동생이 나라면 차마 용기를 내, 하지도 못할 저런 일들을 하고 손이 메말라 거칠어지고 얼굴이 푸석해지고 살이 빠져가는 걸 보면서 왜 한 번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을까?

"이번 달부터 월급이 반이 줄었어..."

제부의 회사에 문제가 생겼다고 철석같이 믿었을까. 동생도 나도 바보라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우리는 가족을 믿었다. 서로 가족으로 묶였기에 신뢰했고 존중했다. 동생은 어린아이들을 위해 이혼 생각을 쉽게 하지 못하고 그냥 아이들을 위해 곁을 지키는 게 다라고 믿었단다. 이제 와서 자꾸 되짚어 보면 뭐하나?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는데...

동생이 그놈과 헤어지지 못하고 언제까지 노예 생활이 계속될지, 언제까지 폭행을 당하고 의처증 환자에게 추궁을 당할지 그게 가장 두려웠기에 우리는 계속 움직이고 행동하고 실행한다. 조카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학교 생활을 하기 때문에 나의 노트북도 이른 시각이나 늦은 오후가 아니면 쓰지 못한다. 줌으로 실시간 수업을 받는 첫째 조카로 인해 노트북도, 나의 폰 배터리 충전기도 양보할 수밖에 없다.

엄마와 나는 아빠의 노름으로 집이 거덜나는 것을 겪었고 두려웠다. 우리 앞의 생이 무너지지 않을까 늘 염려하며 돈 걱정이 마를 날이 없었다. 동생은 그 딴 놈에게 잘못 걸려 인생과 청춘을 뿌리째 뽑혔다. 이혼을 못해 죽고 싶을 정도로 공황증도 생긴 아이는 빨리 말하기도 힘들고 내가 답답한 마음에 큰 소리를 치거나 말을 쏟아내면 견디기 어려워한다.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진술서를 준비하면서 많이 울었다. 그놈이 보낸 소장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면서 울지 않으려고 입을 악물었다. 어느 순간 세상이 두려운 대신 맞장 떠야 하는 무시무시한 대상이 되어버렸다. 왜 두렵지 않겠는가. 이 달 생활비는 감당이 될 정도로 수입이 들어올까? 월세와 이자를 낼 돈이 남아 있나? 가족이 늘어난 지금 카드 지출 비용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조카들이 기죽을까 봐 두려워서 새 학기가 시작될 때 가방과 신발, 바람막이 외투를 사주었다.

조카들이 우리 집에 와서 나랑 가장 먼저 한 일은 생활 계획표 짜기. 계획표대로 잘 되진 않지만 어그러진 것을 바로 잡고 싶었고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를 건지고 싶었다.

'1. 자신이 먹은 밥그릇은 설거지 통에 담가놓기, 2. 신발 정리하기, 3. 자기 이불 정리하기' 따위의 다섯 가지 정도를 규칙으로 정했다.

"너희가 지킬 수 있는 걸로 써.

이모와의 약속을 잘 지키면 매주 월요일마다 용돈 3천 원을 입금시키거나 현금으로 줄 거야.

이모는 너희 아빠와 달라. 꼭 지킬 거야. 두고 봐."

용돈을 입금하는 월요일이다. 조카들이 경제적으로 힘든 미래를 맞이할까 두려워서 나는 잔소리가 많아진다. 그리고 경제 교육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월요일마다 아이들이 한 행동에 맞게 용돈을 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밀 할아버지가 말한 두려움이 우리의 동맹군이라면 우리는 꽤 든든한 동맹군이 항상 있었고, 지금도 곁에 있는 것이다. 그 말 자체가 주는 위로와 격려가 적지 않다.

이제 슬슬 배가 고프다.

'나쁜 놈, 네가 한 대로 다 돌려받을 거다. 우리가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봐라!'



이전 04화3.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판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