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함과 싸워도 할 일은 해야 하기에
버스를 타고 가다 자꾸 잠이 와서 한쪽 팔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잠깐 눈을 부치고 일어난다. 창밖을 보고 어디쯤 왔는지 확인한 후 참아보려고 하지만 또 잠이 온다. 요즘 나는 잠과의 전쟁이다.
오전 7시가 되기 전 일어난다. 자가용도 없이 버스를 타고 알바를 하러 나가는 딸애의 아침을 챙겨주기 위해서. 딸은 아침을 잘 먹지 않지만 일을 하려면 배를 채워야 하기에 꼬박꼬박 밥상을 차린다. 물론 밥 반 공기도 채 먹지 않지만. 도시락까지 싸야 한다. 얼마나 힘이 들까? 이혼 소송 중인 지금, 아이들을 위해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딸은 또 일을 한다. 애처롭고 가엾다. 불쌍한 것, 네 고생은 언제쯤 끝이 날까? 그래도 본인이 하겠다니 말릴 순 없다. 말린다고 듣지도 않지만. 그 대신 지지하고 응원하고 챙겨주기로 했다.
오전 7시쯤에는 손녀가 일어난다. 이번 주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학교에 가야 한다. 아침을 먹이고 잘 가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래도 이 상황에서 아무 탈 없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손녀가 등교하면 그다음은 손자 차례. 래퍼가 꿈인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폰을 찾아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본다. 그리고 아침을 먹고 또 게임을 하다 시간이 되면 알아서 책상 앞에 앉는다. 노트북을 켜고 e-학습터에 접속하여 수업을 받는다. 배움 공책에 필기를 하고 수업이 다 끝나면 "피니쉬(finish)!"라고 외치며 방에서 나온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토끼처럼 껑충 뛰어다닌다. 엄마를 닮아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는 입을 쉬지 않고 뭔가 중얼거리고 랩을 하거나 노래를 한다.
"선생님이 점심시간에 할 거 다 하면 큐브를 해도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큐브를 꺼내니까 아이들이 다가와서 다 쳐다보더라구요.
제가 다 맞추니까 아이들이 박수를 쳐줬어요."
머리맡에 자신의 행운이라며 큐브를 놓고 잔다. 아이에게 행복한 추억을 안겨준 선생님과 박수를 쳐주며 응원해준 아이들이 고맙다. '잘하고 있구나.' 안심이 된다. 물론 아이 속에 담긴 모든 상처와 괴로움을 나는 다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적응하고 학교에 잘 다니고 밝게 지내는 것을 보면 행복하다.
그런데 어깨가 뻐근하다. 수술 후 잠을 편히 못 자고 몸을 웅크려서 그런지 언젠가부터 어깨 통증이 심해졌다. 딸애가 주물러주면 좀 낫지만 그래도 통증이 사라진 건 아니다.
밤 9시가 넘으면 잠이 마구 쏟아진다. 틈틈이 하품이 나온다. 어깨는 더욱 욱신거린다. 그래도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쓴다. 해야 할 일이기에.
“치열하게 싸운 자는
적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안다.”
황지우 시인의 말처럼 알람을 맞추고 알람이 울리면 일으키기 힘든 몸을 억지로 깨워 세운다. 그리고 방을 나선다.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일 나가는 딸과 학교 가는 손주들을 위해서. 설거지를 하고 바닥을 닦는다. 머리카락이며 아이들이 흘린 음식 부스러기가 식사 후 단골손님처럼 반드시 나온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최소 하루 두 번은 바닥을 닦아야 마음이 놓인다. 질서가 잡히고 머릿속이 개운해진다.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한다. 세탁기가 다 돌아가면 빨래를 넌다. 한 숨 돌리려는 찰나 점심 때가 다가온다. 물론 이 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기에는 집안일이 계속 눈에 들어와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여유가 부족하다. 뭔가에 온전히 집중을 하기 힘들 정도로 해야 할 일이 자꾸 생겨난다.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 드라마를 보던 나날은 언제쯤 다시 오려나. 아니, 자고 싶은 만큼 푹 잘 수 있는 날은 오기나 할까? 뒤늦은 손주 육아에 딸까지 보살펴야 하는 나는 정신줄도 깜빡! 뭔가 빠뜨리거나 얼른 생각해내지 못할 때도 잦아진다.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그래도 아직은 후퇴하거나 멈추지 못한다. 몸이 피곤해서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면 그냥 한다. 당위성이 피곤함을 이긴다. 꼭 돌봐줘야 할 가족이 곁에 있으니까.
큰딸과 무료법률구조공단에 가서 답변서를 제출했다.
"답변서를 잘 적으셨네요."
콱 막힌 속이 뚫리는 듯 시원한 말이다. 기분이 좋아진다. 어떻게 일이 처리됐는지 궁금해 전화를 건, 작은아이에게도,
"다 잘 됐어! 아무 걱정하지마."
라고 말해주었다. 어제 늦게까지 둘이서 뭔가를 열심히 적더니 답변서가 꽤 괜찮게 나왔나 보다. 안심이 된다. 그런데 갈수록 몸이 처진다. 힘이 없고 속이 조금 메스껍다. 눈이 자꾸 감기려 한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중인데 끝까지 잘 버텨주기를!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 그만 자련다. 오늘은 성과가 있는 기분 좋은 하루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