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니까 하소연할 곳이 필요해!
<일간 이슬아>를 발행하는 이슬아 작가는 <<부지런한 사랑>>이라는 에세이집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이 소년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을 벗어나려고 할 때 나는 복잡한 심정이 된다. '아마도 너는 이제부터 더 깊고 좋은 글을 쓸 거야. 하지만 마음 아플 일이 더 많아질 거야. 더 많은 게 보이니까. 보이면 헤아리게 되니까.' 속으로만 생각한다. 그래도 살아갈 만한 삶이라고, 태어나서 좋은 세상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런 세상의 일부인 교사가 되고 싶다."
이 문장을 읽는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무슨 말인지 아니까. 어떤 심정에서 하는 이야기인지 너무 잘 아니까. 나 역시 십대를 처절하고 끔찍하게 보냈다. 날마다 노름꾼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는, 지금은 무덤에서 휴식 중인 아버지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낸 적이 없을 정도니까. 십 원짜리 욕을 하며 담배 연기로 가득 찬 거실.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숨 막히는 인생을 일찍이도 알았으니 사람으로 태어난 게 저주스러울 정도로 화가 났다.
'차라리 저 소나무처럼 나무로 태어났다면... 이런 끔찍한 일은 안 겪어도 됐을 텐데...'
그렇다고 생을 마감하기에는 지켜야 할 게 있었다. 착한 엄마에게 "저 집 딸이 죽었대." 따위의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나는 스스로를 많이 사랑했다. 태어났으니, 지옥같이 괴로운 집구석이어도 우선 사는 데까지는 최대한 살아야겠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와 나, 동생은 연대하여 즉시 탈출한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고3 담임의 권유로 사범대학에 가서 4학년 때 교생실습을 나갔다. 공부에 뚜렷한 뜻도 없이 졸업을 하기 위해서 정해진 순서를 따라 치렀던 행위였다. 남녀공학이었는데 벚꽃과 개나리로 가득 찬 아름다운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문제는 쉬는 시간마다 남학생들이 복도에서 치고 받고 싸운다는 것. 그들 눈에도 어리게 보이는, 샘보다 누나에 가까운 내 말이 먹힐 리가 없었다.
실습이 끝나기 전 마지막으로 수업 시연을 앞두고 답답했던 마음이 화장실에서 눈물로 터졌다. 아이들과 부대끼는 것이 힘들었다. 저런 애들을 어떻게 통제해야 되나? 다스릴 수나 있을까? 이런 생각에 한숨을 너머 눈물이 나온 것이다. 물론 보람도 있었다. 실습이 끝나고 한 아이는 평생에 잊지 못할 편지를 보냈다. 러브레터? 당연히 아니다. 내게 그런 편지는 오지 않았다. 대신 가정사를 몰래 적은 어느 아이가 있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힘든데 종종 연락해도 되냐고? 물론 된다고 답장을 보냈던가. 그 아이 집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나에게 그런 비밀을 이야기해준 아이가 너무 고마워서. 내가 뭐라고, 아직 선생님의 '선'자를 꺼내기도 적합하지 않은 내게 솔직히 말해준 것이 얼마나 고맙던지. 그 아이를 꼭 지켜주고 싶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고 축복을 비는 마음 변함이 없다.
내가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용감해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말이 없었고 내 이야기를 남들에게 하지 않았다. 지금은 물어보면, 입을 열면 자연스레 줄줄 나온다.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그것이 나의 힘이다. 억울한 일을 당했으면 마음이 병든다. 그래서 털어놓아야 살아갈 수 있다. 누군가 자살도 표현의 한 형태라고 했다. 그렇게 자신을 표현하는 거라고. 인간은 그런 존재라고. 숨긴다고 남들이 알아줄까? 아니, 오히려 자기 멋대로 지어내고 상상하기 쉽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내 입으로 과감하게 말한다.
"지금 상황이 이렇다. 너무 어렵고 힘들다. 그놈 때문에 우리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 그러면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하면 더 힘이 들어가고 긴장되어 실수하기 쉽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뭔가 받으려 하거나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고 '결과가 어찌 되든 나는 내 갈 길을 간다'는 심정으로 살아가면 덜 긴장하고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는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더 연대해서 함께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혼자는 위태롭고 속도가 나지 않을 수 있지만, 여럿이 준비하고 추진하면 그만큼 속도가 더 붙을 수 있기 때문에.
연대를 무서워하지 말라! 아, 잠깐, 그렇긴 하다. 누구와 연대하느냐는 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사항이다. 직감적으로, 대화를 해보면 상대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그게 살아온 세월만큼 쌓이는 노하우이자 연륜이니까. 아직 어려 사람을 살펴볼 경험이나 혜안이 부족하다면,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면 인간성을 파악하기 쉬울 것이다.
엄마가 수술한다고, 수술해야 한다고 주변에 말했을 때 몇몇 지인은 돈을 송금해줬다. 동생이 이혼 소송을 하는 중이고 신용불량자라고 털어놓으니 어느 목회자는 교회의 이름으로 구제비를 보내주셨다. 싸우는 데 보태라고, 기운 잃지 말라고, 다 잘 될 거라는 그들만의 연대의식에서 나오는 지지의 표시이다. 그렇다고 도움받고만 살 수 없다. 살다 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입금하고 도움을 주는 시점도 올 것이다.
아침에도 우체부 아저씨가 사전 신청서가 담긴 등기를 건네준다. 저번보다는 여유가 생겼다. 법률구조공단에서는 대응할 필요는 없고 서류만 가져오면 된단다. 그래도 이혼 판결을 받을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이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 따위는 버렸다. 그냥 산다. 살 것이다. 살아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