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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Jan 28. 2022

사연 있는 음식들

추억을 그리는 음식

“이모, 오늘 뭐 시켜 먹을까?”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귀여운 둘째 조카가 집밥 대신 배달 음식을 재촉한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건만 일부러 장 봐 반찬 해놓은 어머니께는 죄송. 밥솥에 밥도 한가득인데...


“뭐 먹고 싶어?”

“덮밥 시켜먹을까?”


참치 마요 하나!

곱빼기 참치 마요에 치킨 추가!

마파두부 덮밥 하나!


“이거 합숙할 때 먹었는데...”

조카들이 어릴 때 다녔던 태권도장에서는 방학 때

한 번씩 합숙을 하며 영화도 보고 같이 밥도 먹었나 보다. 그때 시절이 그리운 걸까? 아이의 말을 들으니 먹먹하다. 지금은 학원을 못 보내는데... 많이 심심하고 지루한 게 아닐까. 아휴, 방학인데 집콕만 하는 애들이 가엾어진다. 그리고 또 미안해진다.


내게도 덮밥은 추억이다. 사회 초년생일 때 다른 지역에서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에서 일할 때다. 한 번씩 원장 샘은 햄버거나 덮밥을 시켜주셨다. 그때 덜 느끼해 보이는 마파두부 메뉴를 골랐는데 그 시절이 스쳐간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고 신기하고 어렵고 행복하고 아팠던 그때가.


음식에도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아이가 그냥 찾는 게 아니라 뭔가가 고파서, 그리워서, 허전해서 저 음식을 찾았다면 더 잘해줘야지 이 생각이 든다. 그때보다 내 상황은 나아졌을까? 글쎄...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것 같고 에너지도 많이 빠진 것 같다.


하트 뿅뿅 엄마의 집밥, 어머니의 손길이 묻은 상차림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 찍을 때마다 사연을 가슴에 담는다.


선물 받은 제주 어묵은 잘게 썰어 볶아  만들고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는 데쳐 초장까지 준비하셨다. 식구들이 것저것 주워 먹느라 정작 밥은 찬밥 되어 남으면 애매하게 남은 반찬과 함께 볶아 대기 ! 이마저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배가 부른 건지 간이 부은 건지.

게을러터진 다 큰 자식들 제 손으로 과일 한번 안 깎아 먹기에 일일이 손수 깎아 고이 담아놓고 선택을 기다린다. 있을 때 잘해야 하는데 여전히 철없다.


요즘은 어머니 얼굴 보며 도란도란 얘기할 틈도 없이 밀린 집안일 각자 하며 지친 몸 누이기 바쁘고, 예전처럼 어머니 상차림에 감동하여 문자 날릴 힘도 없이 하루가 어찌 지나가는지. 나이 들면 사연만 느는지 사연 있는 음식 사진 올리며 열심히 폰 두드리는 나.


작년,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 동생일도  마무리되었는데 행복한지 모르겠다.  이리 마음은 자꾸 거칠어지기만 하는 건지. 갈수록 여유는 적어지는지, 눈물은 많아지는지, 자신에 대한 연민은 커지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사연 있는 음식으로 마음을 키우고 힘을 키우고 그릇을 키워  견고한 인간이 되고 싶다. 그건 그렇고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은 휴식!!!


아, 인생이여

고난의 바다여

출렁이며 몰려드는 운명의 수레여

오라

내게로 오면

나는 그 파도를 타고

열심히 넘으리니

내게로 와서

얼마나  넘노는지

직접 지켜보라!

그러나

한숨  틈은 주면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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