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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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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Nov 18. 2021

손을 내미는 사람들

아기 엄마에게 자리를 양보한 아이

버스는 혼잡했다. 사람들은 따닥따닥 붙어 몸을 움직일 여유 공간조차 부족하고 여러 명의 사람이 한 좌석 앞에 서 있느라 몸을 지탱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중에 내 앞에 앉은 고등학생이 무언가 불편한지 다리를 어설프게 벌리고 눈동자는 이리저리 무언가를 쫓는 듯했다. '서 있을 공간도 부족한데 다리 좀 접지' 생각하며 학생이 불안해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하던 찰나였다.

"저기 잠깐만요."

갑자기 일어서서 앞으로 향하더니 아기를 앞으로 안은 아기 엄마에게 "여기 앉으세요."하고 말하는 거였다. 학생은 처음부터 아기 엄마가 서있는 것을 보고 신경이 쓰여 엉거주춤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아기 엄마가 자신의 바로 앞에  있던 것도 아닌데 그녀를 위해 일부러 자리를 양보한 용기와 적극성이 놀라웠다. 나라면 그럴  있었을까? 누군가를 돕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이 자신의 일에 집중할   학생의 눈은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냥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실천에 옮겼다.  

사랑하는 것은 마음에서 그치지 않고 행함으로 이어져야 진정성이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사랑하면 지켜주지.”

영화 <이터널스>에 나오는 장면 중 와닿는 대사이다. 영화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힘 좀 자랑하는 마동석은 길가메시로 열연했다. 그가 힘들어하는 테나(안젤리나 졸리)를 지키며 그녀에게 했던 말이다. 그녀는 자신을 보호하며 곁에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었던 그를 기억하며 고마워한다.


‘나이도 어린데 벌써 저런 인성을? 어떻게?’

학생을 보며 놀랬다. 자기 앞자리도 아닌데 일부러 나서서 자리를 양보한 모습이 놀랍기도 하고 무심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올해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때로 내가 했던 일을 방패 삼아 스스로를 너무 크게 생각한 건 아닌지. 동생과 조카들, 어머니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피부로 느끼며 공감하지 못한 건 아닌지.

자신을 너무 크게 보면 다른 이들을 그대로 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제대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 눈은 사랑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그 학생이 거울이 되어 내 모습을 반사시켰다. 그리고 억울하고 힘들었던 마음이 조금은 닦이는 기분. 누군가에게 손 내미는 누군가를 보며 나의 거울이 어제보다 더 깨끗해져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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