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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Sep 11. 2022

한가위만 같아라

가족의 의미

주말마다 놀러 오던 손님이었던 꼬맹이 조카들은 어느새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이 되었고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여러 가지 일을 겪은 아이들에게 사랑이 부족해서 비뚤어지는 일은 없도록 웬만하면 하고 싶은 것을 감당할 수 있는 한에서는 들어주고 싶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요구하는 듯한, 아직 아기 같은 초딩 조카는 학원을 못 보내기에-경제적 이유-집에서 컴퓨터와 폰 게임으로 뒹굴뒹굴. 그야말로 ‘먹고 자고 놀고’의 연속이다.

어머니 원대로 식사 시간이 다 다른 식구들이라 한 상에 둘러앉아 얼굴 보기도 힘들다. 예전에는 내가 먹은 것만 치우면 되었는데 요즘은 하루에 제각기 다른 식사로 설거지 횟수가 대여섯 번이 되고 바닥 청소도 하루에 최소 두 번 이상은 해야 한다.


초딩 조카가 끓여준 안성탕면. 뽀글이 라면 같다.

“이모, 라면 먹을래?”

추석 연휴, 퍼져서 텔레비전을 보는 내게 초딩 조카가 직접 라면을 끓여준단다. “이모, 물 줘.”, “이모, 배고파.”, “이모, 오늘은 뭐 시켜먹을까?” 등등, 스스로 하는 일보다 시키는 일이 많았고 내가 해주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누나 따라 본인도 라면을 끓여보더니, 이제는 이모에게 친히 야식을 만들어주는 입장이 되었다. 나로서는 덜 귀찮고 몸무게 걱정은 되지만, 외롭지 않은 시절이 찾아온 거다.


건강 걱정에 물 많이, 수프 적게 넣는 이모식 라면이 아니라 물 적게, 수프 왕창 넣어 더 짭짤한 조카식 라면. 아까 조카가 놀러 간 사이 라면을 저녁으로 먹었지만 같이 야식을 즐기자는 조카의 요청을 거절 못 하고 몸무게도, 나트륨 수치도 상승!

사춘기 중딩 조카 눈치도 봐야 하고, 주부의 고뇌와 밥상 차리기도 지겨워 짜증이 일어날 때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생을 살아가는 것은 의외의 행복과 뿌듯함, 조금의 성취감과 충만함을 주기도 한다. 이래서 사람들이 자식을 낳고 가족을 이루고 제 새끼는 힘들어도 키우나 보다.


시험 기간 공부 가르쳐 달라는 중딩 조카에게 이모에서 학원 선생님 모드로 바뀌어 쓴소리 하다 아이가 울고 토라져서 식겁했다. 내 입장에서는 잘 되라고 한 말이 아이에게는 상처가 되어 오해로 번지고, 마음 불편한 내가 사과하며 손을 내밀었지만, 제 엄마에게 일러바쳐 이럴 땐 참 곤란하다. 쉽지가 않다.

문제점은 이것이다.

“모든 언행을 칭찬하는 자보다 결점을 친절하게 말해주는 친구를 가까이 하라.”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결점을 지적하는 나의 언어가 불친절했다는 것.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하기엔,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고 그냥 쉽게 지나가는 날이 없다. 성향이 다른 동생과 기질이 비슷한 첫 조카도 나와 다르기에 더 조심스럽고 주의해야 한다. 가족이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때로는 피곤하고 혼자만의 호젓한(?)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속으로 삭여야 하는 일도 늘어난다.


기사 소설에 빠져 진짜 편력 기사가 된 돈키호테와 달리 가사와 육아의 고충이 달갑지 않아 결혼도 회의적인 내게 하늘은 더 많은 숙제와 식구를 늘려 나의 마음 그릇 또한 넓히라고 주문하시는 것 같다.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도 아니고 얼마나 큰 사람 만들어 쓰시려고 이러시나 싶다가,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수용하게 된다. 포기도 하고 익숙해지기도 하며 달처럼 둥글어지는 과정이리라.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돌아서면 섭섭했던 것은 금세 사라지고, 또 살아진다. 지금은 많은 것을 담을 여유가 없다. 그래도 삶을 함부로 살고 싶지는 않다. 떡방아 찧어 쫄깃한 식감의 떡이 완성되듯 울퉁불퉁 식구들과 좌충우돌 방아 찧듯 모난 부분 찧어 가며 잘 살아가고 싶다.


추신. 맨 위 달 사진은 올해 직접 찍은 사진이라며 주일학교 부장 샘이 단톡방에 올렸길래, 예뻐서 퍼 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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