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모아 모아 모아서
코로나 사태 이후 모임을 지속하지 못하다가 거의 3년 만에 다시 만났다. 도서관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후속으로 자체 동아리, <글친>(지금은 <삶을 쓰다>로 변경, 내 매거진 이름이기도 하다) 결성! 이 모임 이름(글친)을 지어준 작가님은 어느 순간 바람과 함께 사라지셨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 각종 공모전에서 시로 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멀리서 축하드려요.
게으른 총무이고 연약한 총무라서 단톡방에서 연락 한 번 제대로 못 드려도 아무도 도망 안 가시고 잠잠히 계시더니 지난달부터 조금씩 움직임이...
작년 이모의 죽음 이후 부랴부랴 급하게 부크크에서 책을 낸 나는 지난달 개인 사정으로 참석을 못 했다. 드디어 오늘 미리 주문한 책을 가져다 드리니 볼펜을 꺼내 사인을 해달라고 하신다. 기획 출판이 아니라서 대놓고 사달라고 말씀드리기가 그랬는데, 부모님 같고 선배님 같은 이분들은 평범한 문구에도 좋아하시며, 감동을 되돌려주신다.
왜 본명으로 책을 내지 않았냐고 물으시길래, 브런치에서 윤작가로 활동해서 그냥 그렇게 했다고 하니 다음에는 꼭 이름을 넣으라고 하신다. 책 소식을 들은 분들은 벌써 이번 책이 아닌 다음 책부터 말씀하신다. 거룩한(?) 부담이다. 나는 무언가를 억지로 못 하는 인간이고, 목표가 정해지면 또 융통성 없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조금씩 나아가는 사람이다. 마음 달래기 위해, 울분 쏟아놓기 위해 이곳에 썼던 글들이 모여 매거진이 되고 책이 되었다. 그것은 잘 나서가 아니라 작가가 되고 싶은 나의 욕망과 운과 하늘과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하나의 과정이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개인적으로 몸도 아프고 집에도 일이 생겼지만 <삶을 쓰다> 작가님들도 각자 여러 가지 활동으로 열심히 살아오셨다.
열정파 어느 작가님은 예전 그대로(달라진 게 있다면 가발 대신 빛나는 자신감으로 더욱 충전해서) 공모전에 도전하자고 또 우리를 들볶으신다. 각자의 삶을 잘 챙겨 오신 분들 가운데 오로지 나만 에너지가 없는 것 같아 속으로 죄송스럽기도 하고 그래도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하기도 했다. 모임에서 가장 어린 내가 왜 가장 힘이 없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럴 때가 되었구나." 이렇게 말씀하시며 심각하지 않게, 지나가는 과정 중 하나처럼 가벼이 말씀해 주시고 받아주셔서, 또 그게 힘이 된다. 이런 게 경험에서 오는 지혜이고, 삶에서 우러나는 관록이라는 거구나 느꼈다.
이분들을 뵙고 나니 어제 발견한 문장이 떠오른다.
"그날의 수확이 아니라 그날 심은 씨앗으로 하루하루를 평가하라."(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인문학 모임에서 알게 된 어느 선생님. 이분도 고마운 분이다. 연락이 잘 되다 안 되다를 오가며 서로에 대해 응원하는 마음으로 가끔씩 안부를 전했는데 어느 순간 자꾸 책 쓰라고 종용하시는 거다.
"책은 잘 쓰고 있나요?"
'네에? 갑자기 책 이야기를...'
그냥 그러려니, 안부 인사 정도로 여기고 지냈는데 어느 순간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책 안 내면 정말 못 보는 거 아냐?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무슨 생각인지(이모의 죽음 이후 큰 충격을 받았는지 시간이 자꾸 아깝다는 생각이 수시로 든다) 번개 맞은 것처럼 글을 수정하고 편집하고 부크크와 연락해서 이 세상에 책이 나왔다. 같이 공부하는 샘들과 <지공체>에서 공저를 내기도 하고 그전에 도서관 글쓰기 수업을 듣고 문집이 나오기도 했지만, 스스로 쓴 글을 엮어 혼자만의 책은 또 처음이라 설레고 얼떨떨하고 정신없지만 행복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공인은 아니지만, 세상에 내가 책을 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몇 명만 있어도 이게 어디야, 하는 충족감으로 올봄을 맞았다.
지면을 빌려 다 이야기 못 한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감기에 걸려서인지 가만히 있으면 힘이 쑥쑥 빠지는 것 같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또 뭔가를 하려고 하면 힘이 든다. 우울증인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아서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을 받아 또 감사한 하루다. 책 싫어하는 어느 제자는 그래도 선생님이 책 냈다고 한 귀퉁이를 찍어 카톡 프로필로 며칠 걸어줬다. 어머니는 딸이 쓴 책을 읽으며 울었다고 하셨다. 동생은 읽지는 않았는데 책을 낸 것으로 존경스럽다 한다. 조카들은 무반응이다. 나는 어쩌다 한 권 팔리면 기분 둥둥!
이모의 죽음이 나를 몰아갔다. 어쩌면 내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될지 모른다는 그 위기감이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게 만든 것인지도. 지금 동네는 축제 준비로 곳곳마다 현수막을 내걸고 아직 피지도 않은 꽃자랑을 한다고 요란하다. 하늘은 뿌옇고 기온은 따뜻한데 기분은 아리송하다. 들리는 피아노곡은 마음처럼 차분하지만, 이 오후 오랜만에 마음이 평안하다. 사람들의 힘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