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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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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Mar 22. 2023

고마운 사람들

사랑을 모아 모아 모아서

글쓰기 모임 공식 메뉴, 돌솥비빔밥

코로나 사태 이후 모임을 지속하지 못하다가 거의 3년 만에 다시 만났다. 도서관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후속으로 자체 동아리, <글친>(지금은 <삶을 쓰다>로 변경, 내 매거진 이름이기도 하다) 결성! 이 모임 이름(글친)을 지어준 작가님은 어느 순간 바람과 함께 사라지셨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 각종 공모전에서 시로 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멀리서 축하드려요.

게으른 총무이고 연약한 총무라서 단톡방에서 연락 한 번 제대로 못 드려도 아무도 도망 안 가시고 잠잠히 계시더니 지난달부터 조금씩 움직임이...


작년 이모의 죽음 이후 부랴부랴 급하게 부크크에서 책을 낸 나는 지난달 개인 사정으로 참석을 못 했다. 드디어 오늘 미리 주문한 책을 가져다 드리니 볼펜을 꺼내 사인을 해달라고 하신다. 기획 출판이 아니라서 대놓고 사달라고 말씀드리기가 그랬는데, 부모님 같고 선배님 같은 이분들은 평범한 문구에도 좋아하시며, 감동을 되돌려주신다.


왜 본명으로 책을 내지 않았냐고 물으시길래, 브런치에서 윤작가로 활동해서 그냥 그렇게 했다고 하니 다음에는 꼭 이름을 넣으라고 하신다. 책 소식을 들은 분들은 벌써 이번 책이 아닌 다음 책부터 말씀하신다. 거룩한(?) 부담이다. 나는 무언가를 억지로 못 하는 인간이고, 목표가 정해지면 또 융통성 없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조금씩 나아가는 사람이다. 마음 달래기 위해, 울분 쏟아놓기 위해 이곳에 썼던 글들이 모여 매거진이 되고 책이 되었다. 그것은 잘 나서가 아니라 작가가 되고 싶은 나의 욕망과 운과 하늘과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하나의 과정이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개인적으로 몸도 아프고 집에도 일이 생겼지만 <삶을 쓰다> 작가님들도 각자 여러 가지 활동으로 열심히 살아오셨다.


열정파 어느 작가님은 예전 그대로(달라진 게 있다면 가발 대신 빛나는 자신감으로 더욱 충전해서) 공모전에 도전하자고 또 우리를 들볶으신다. 각자의 삶을 잘 챙겨 오신 분들 가운데 오로지 나만 에너지가 없는 것 같아 속으로 죄송스럽기도 하고 그래도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하기도 했다. 모임에서 가장 어린 내가 왜 가장 힘이 없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럴 때가 되었구나." 이렇게 말씀하시며 심각하지 않게, 지나가는 과정 중 하나처럼 가벼이 말씀해 주시고 받아주셔서, 또 그게 힘이 된다. 이런 게 경험에서 오는 지혜이고, 삶에서 우러나는 관록이라는 거구나 느꼈다.

이분들을 뵙고 나니 어제 발견한 문장이 떠오른다.

"그날의 수확이 아니라 그날 심은 씨앗으로 하루하루를 평가하라."(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또 다른 벗이 선물해 준 수 놓인 엽서

인문학 모임에서 알게 된 어느 선생님. 이분도 고마운 분이다. 연락이 잘 되다 안 되다를 오가며 서로에 대해 응원하는 마음으로 가끔씩 안부를 전했는데 어느 순간 자꾸 책 쓰라고 종용하시는 거다.

"책은 잘 쓰고 있나요?"

'네에? 갑자기 책 이야기를...'

그냥 그러려니, 안부 인사 정도로 여기고 지냈는데 어느 순간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책 안 내면 정말 못 보는 거 아냐?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무슨 생각인지(이모의 죽음 이후 큰 충격을 받았는지 시간이 자꾸 아깝다는 생각이 수시로 든다) 번개 맞은 것처럼 글을 수정하고 편집하고 부크크와 연락해서 이 세상에 책이 나왔다. 같이 공부하는 샘들과 <지공체>에서 공저를 내기도 하고 그전에 도서관 글쓰기 수업을 듣고 문집이 나오기도 했지만, 스스로 쓴 글을 엮어 혼자만의 책은 또 처음이라 설레고 얼떨떨하고 정신없지만 행복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공인은 아니지만, 세상에 내가 책을 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몇 명만 있어도 이게 어디야, 하는 충족감으로 올봄을 맞았다.


지면을 빌려 다 이야기 못 한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감기에 걸려서인지 가만히 있으면 힘이 쑥쑥 빠지는 것 같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또 뭔가를 하려고 하면 힘이 든다. 우울증인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아서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을 받아 또 감사한 하루다. 책 싫어하는 어느 제자는 그래도 선생님이 책 냈다고 한 귀퉁이를 찍어 카톡 프로필로 며칠 걸어줬다. 어머니는 딸이 쓴 책을 읽으며 울었다고 하셨다. 동생은 읽지는 않았는데 책을 낸 것으로 존경스럽다 한다. 조카들은 무반응이다. 나는 어쩌다 한 권 팔리면 기분 둥둥!

이모의 죽음이 나를 몰아갔다. 어쩌면 내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될지 모른다는 그 위기감이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게 만든 것인지도. 지금 동네는 축제 준비로 곳곳마다 현수막을 내걸고 아직 피지도 않은 꽃자랑을 한다고 요란하다. 하늘은 뿌옇고 기온은 따뜻한데 기분은 아리송하다. 들리는 피아노곡은 마음처럼 차분하지만, 이 오후 오랜만에 마음이 평안하다. 사람들의 힘이리라.


나를 사로잡은 문장들 – Daum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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