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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May 23. 2023

사람이 좋아지는 순간

인공지능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흐드러진 장미가 눈부셔서 찰칵!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담장을 훨씬 넘어 모빌처럼 늘어진 장미가 걸음을 붙잡는다.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찍는다. 마음속에만 저장해 놓기에는 시간의 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발걸음을 가볍게 한 것은 장미만이 아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우리 집까지의 거리에서 중간 정도 됐을 무렵, 청소년이 올라탄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난감한 소녀의 얼굴. 조금 뒤,

"결제가 취소되었습니다."

버스 기사님이 뭔가 조치를 취하셨는지 상황은 원점. 

"잔액이 부족합니다."

이리 해도, 저리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인가 보다. 




"다른 카드 없죠?"

"네.. 여기서 세워주세요..."

소녀의 말을 들은 기사님은 잠깐만요, 하시더니 금세 이런 소리가 들린다.

"다음 승차시 충전이 필요합니다."

돈이 부족한 십 대의 마음을 헤아려 기사님이 무료로 태워주신 것이다. 잠시 마술을 부려 정상적인 기계 소리와 함께 아이는 무사통과!

'이야, 저런 분이 계시네. 좋은 세상이야.' 이런 생각을 하며 여유롭게 창밖을 보는데 조금 지나자 그 소녀는 멋쩍은 듯이 내렸다. 

'나 같으면 고맙습니다 정도는 했을 텐데.'

꼰대 같은 생각을 하며 버스에서 내린다. 그리고 얼마 후 저 장미와 마주친 것이다. 


 AI 기술이 대체적으로 정량적인 정보에  더 능숙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상호작용이 더욱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I 기술이 음성 인식 기술을 바탕으로 대화하더라도 학습자가 교수자와 대화하는 것보다는 인간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챗GPT 교육혁명>> 중 -


만약 인공지능이었다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처리했을까? 수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잔액이 부족합니다."

"..."

"잔액이 부족합니다."

"돈이 없어요..."

"..."


버스 기사님처럼 능동적으로 대처하거나 넓은 아량으로 아이가 무안하지 않게 야단도 치지 않고, 주의나 잔소리도 없이 조용히. 그러나 감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까? 아니라도 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통하는 공감과 무언의 배려. 감동에 취해 발걸음도 가벼이 집으로 향하다가 장미에 반해 사진을 찍었다. 어깨 아래 팔꿈치까지 늘어진 장미가 신기하고 눈부셔서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아니다. 사람에 취해 흥이 올랐다. 오늘처럼 사람에게 감동받고 흥이 오르면 이렇게 글을 쓴다. 기뻐서 마음이 들뜨거나 너무 열받거나 낙심되어 어찌할 수 없을 때도 글을 쓴다. 그냥 글을 쓰고 싶을 때 쓴다. 고민 없이. 눈치 보지 않고. 이 순간 행복하다. 

"아름다운 밤이에요!"

가만, 나도 'ChatGPT'처럼 누군가의 말을 따라 썼네. 이런! 출처를 밝혀보자. 너무나 유명한 말이지만. 1992년 대종상 시상식에서 <사의 찬미>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배우 장미희가 수상소감으로 꺼낸 첫마디였다고 한다.(인터넷 검색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음)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밤이라는 거다. 적어도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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