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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을 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말

일상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과 일상을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by 윤작가

"아이와 노인의 시신을 수습할 때가 제일 힘들다. 우리 사회가 모든 것을 걸고 지키겠다고 맹세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돌보며 언젠가 우리가 늙고 약해졌을 때는 이 아이들이 우리를 돌보아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아이들의 죽음은 항상 가슴에 사무치는 실패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 로버트 젠슨, 유류품 이야기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아이들과

이 책이 떠오른 것은 어제 주일학교 우리 반 아이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카톡으로 전해진 참사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똥강아지 중등부 아이들과 올해 마지막 청소년부 예배를 드리면서 반비로 무엇을 먹으러 갈까 고민하다, 분위기 있는 곳을 정했다. 물론 이런 곳은 연인이나 가족과 우아한 식사를 하기에 적합하겠지만, 제법 머리가 굵은 아이들이 아무 데나 안 가려해서 어렵게 정한 곳이었다.

교회에서 그곳까지 걸어가기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앱을 통해 택시를 부르고 각자 원하는 파스타를 시켜줬다. 그러나 택시 안에서 확인한 소식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믿어지지 않는 내용이었다.



주먹밥과 맨밥을 싼 김밥, 동생표 구운 계란, 사과

어제 아침 우리를 깨우기 전, 어머니는 벌써 아침을 마련하셨다. 물론 조카들은 아침을 잘 먹지 않는다. 그래도 어머니는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아침을 차렸다. 요즘 들어 집안일을 힘들어하시는 어머니의 신음 소리를 들으면서도 철부지 딸은 더 부지런을 떨지 못했다. 일상이 얼마나 고마운지도 모른 채, 당연히 주어진 것인 양 하루를 살아간다.

세계 최고의 재난수습기업 케니언 인터내셔널의 회장이자 공동 소유주인 로버트 젠슨은 테러나 자연재해 등을 비롯한 여러 현장에서 유해를 수습하고 시신과 유품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해왔다.


이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인상에 남았던 부분은 실종자를 찾지 못한 유가족들의 마음이었다. 혹시나 어딘가에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에서 가족들을 보내지 못하고 계속 고통 속에 지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어제 참사 뉴스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그거였다. 생사 여부가 확실해야 한다. 그런데 생사 여부는 확실해졌는데, 아직 유해를 수습하고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이 끝나지 않았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얼마나 허망할까? 유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차오른다. 너무나 소소한 사람들이 그저 행복한 일상을 위해 이런저런 사연을 가지고 돌아오던 길이어서 가슴이 아프다.


2024년 마지막 날, 동생네에 배달된 치킨

그럼에도 우리는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일상이 무너진 그들을 보며 너무 아프지만, 또 삶을 지속해야 한다.

지자체에서 조카들에게 치킨을 배달해주었나 보다. 아마 특별한 계층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동생은 언니 몫으로 그릇에 치킨과 감자를 담아 전해준다. 이 치킨을 보며 힘겹지만, 또 살아내야 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을 느낀다.

모레는 2025년 1월 1일, 새해이다. 잔인한 현실 앞에 그래도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인생의 목표를 갖는 것이야말로 죽음에 저항하는 최선의 방어다."

이 말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이탈리아의 화학자 겸 작가 프리모 레비가 했던 말이라고 한다. 이런 말을 남긴 그였어도 삶은 너무 가혹했는지 사고인지 아닌지 확실히 모를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모두가 너무 힘든 2024년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인생을 꼭 붙잡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안 넘어가겠지만, 물을 마시고. 도저히 잠을 잘 수 없겠지만 쪽잠이라도 자고. 눈물이 계속 흐르겠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주시길 부디 부탁드리고 싶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인간이어도 주변을 보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주시길.


신이시여... 이들의 눈물을 어찌하시렵니까? 이들의 마음을 어찌하시렵니까? 저희들을 어찌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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