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당연한 건 없기에
"그녀들의 고난은 가족에서 시작된다. 양육의 의무와 책임이 가족에게 한정된 사회에서는 가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가족 내에서도 가장 약자인 아이에게 제일 큰 부담이 지워진다. 돌봄 제도가 위태로울수록 아이들을 안전하게 품어줄 장소는 없어지고 가족의 위기는 아이의 성장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 우에마 요코
<<맨발로 도망치다>>를 읽고 있다. 요즘 가장 마음을 흔드는 책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흔든다기보다는 이끈다고 해야 할까? 저자인 우에마 요코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태어나 류큐대학 교육학부 연구 교수이다. 제도권 밖의 아이들,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 위기의 아이들을 만난다. 이 분야는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해서 제목을 보자마자 당장 책을 샀다.
동생과 공동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이자 두 명의 조카를 공동 양육하는 이모라는 사람으로, 책이 시사하는 바는 더 크게 다가온다. 관절이 아파 끙끙대면서도 어머니는 조카들에게 집밥을 먹이려고 힘을 다한다. 말 그대로 숟가락 하나 얹는 정도가 아니다. 아이들을 자식 키우듯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매 끼 밥을 짓고 반찬을 새로 해서 상을 차린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식사를 다 할미가 차려주는 밥으로만 먹지도 않는다. 종종 컵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밖에서 사 먹기도 한다. 그럼에도 온몸이 부서져라(?) 정성 다해 밥을 먹이는 할머니의 심정은 사랑이다.
이모라는 사람에게 생명의 신비로움을 안겨준 조카들도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이다. 어느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장차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사람과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섣부른 걱정을 무심코 말하기도 했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그게 무엇을 말하는지 안다. 사랑! 사랑이 충만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과 자신의 자식이 결합하길 원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통계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한부모 가정에서 큰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지원이 부족하기 쉽다는 것도 인정한다. 어쩌면 우리 조카들은 운이 좋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양부모가 멀쩡히 있어도. 아버지와 어머니 다 있는 학원 아이들 중에서도. 부모에게 받은 상처로 방황하고 갈등하는 아이들을 여러 명 만났다. 그렇다면 사실 양부모 가정이냐, 한부모 가정이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돌보는 양육자가 곁에 있느냐 없느냐일 것이다.
오늘 아침 어머니가 부지런히 만든 주먹밥을 보자마자 눈덩이를 모아 쌓아 둔 것 같아 사진을 찍었다. 먹기 좋게, 작은 크기로 만든 주먹밥을 식구들이 맛있게 입에 넣기를 기대하며 만든 그 마음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당연하지 않다. 그것은 사랑 그 자체인 것이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것이다. 눈물 나게 뭉클한 것이다.
이런 밥상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든 딸도 이제 나이 들어가며 조금씩 깨닫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밥상을 차려주시는 어머니도 언젠가는 안 계실 것을. 밥상을 받아 든 딸도 언젠가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힘겨운 생활도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 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지금 주어진 이 모든 것이 모두 감사의 제목이 된다. 천사 같은 어머니, 애정 넘치는 사람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은 나는 행운아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 사랑, 잊지 말자!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자!
그런 마음으로 살고 싶은 하루가 왔다. 오늘은 책을 마저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