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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한다면, 이미 행복자!

인어 공주의 선택

by 윤작가

과외하는 아이들과 같이 읽기로 한 심리학 책에 재미있는 개념이 나온다. '만족자의 법칙'이란 개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극대화자와 만족자가 있다고 한다. 극대화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최고를 선택하는 자이고, 만족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택하면, 다른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아볼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란다.

책을 읽다 보니, 나란 사람은 극대화자가 아닌 만족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의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높은 편이 아니니까. 예를 들어 조금 우울하더라도 잠을 자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꽃을 보면 기분이 새로워진다. 예민한 편인데도 단순한 측면이 있다.


설 하루 전, 어머니 곁에서 주방 보조로 활약!^^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외할머니는 댁에서 쓰러진 후 치매와 허리 부상으로 요양 병원에서 머물다 돌아가셨다. 친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도 다 돌아가셔서 친척집에도 가지 않는다. 그래도 어머니는 큰손답게 자기 밑에 딸린 식구가 많다며 명절마다 음식을 하신다.

설이 되기 전부터 장을 봐와서는 고구마와 오징어 튀김, 명태 전을 부친다. 이제는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동그랑땡은 만들어진 제품을 사서 굽는다.

어머니 곁에서 그릇이나 쟁반을 들고 있거나 명태에 부침 가루를 묻히거나 잔심부름을 했다. 불평불만 없이 어머니 시키는 대로 다 했다. 그게 일종의 효도라고 생각해서.


노랑, 빨강, 초록 파프리가와 버섯, 양파, 어묵 들어간 잡채

평생 명절마다 시댁에서 음식 하며 단련된 연유인지, 어머니는 이제 혼자서 온갖 음식을 다 만드신다. 따로 요리 학원에 간 적도 없는데, 눈대중으로 간 맞추고 손맛으로 버무린다.

맛 감정은 요리에 큰 관심 없는 나의 몫. 조금 짜면 설탕을 더 넣고, 싱거우면 간장 추가. 이런 식으로 서로 조율해서 맛보고 양념 추가하며 잡채도 완성했다.

어머니도, 나도 극대화자가 아니라서 최고를 지향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딸이 얼마나 능력이 많은지보다 얼마나 안전한지, 안 아픈지에 더 관심 많은 양육자였다. 그 사랑으로 살도 많이 쪘다.

한편, 이런 연휴에 가족도 없이 홀로 설을 지내는 이들이 걸리기도 한다.


생전 아버지는 노름꾼이었어도 그런 남편의 아내로, 어머니는 시댁에 충성하듯 명절마다 가서 음식을 차리고 할 일을 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 그 점이 무척 불합리하고 공평하지 못했지만. 어머니는 인간에 대한 넓은 마음으로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자비를 베푼 것인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괜히 남보다 못한 처지 같아 의기소침해질 때가 생긴다. 왜 이것밖에 안 되지?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네? 그런 생각들로 괜히 마음이 쪼그라들기도 하니까. 그런데 극대화자가 아니라 만족자가 된다면 그런 우울한 생각들을 물리칠 수 있다.

아직 살아있잖아. 숨 쉬고 있잖아. 올해도 설을 맞이했구나. 이런 아주 사소한 사실만으로도 감사를 할 수 있다면 만족자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희미한 가능성을 가지고도 기꺼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다리와 맞바꾼 인어 공주는 바보같이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꼭 대가를 전제로 계산기 두드리는 것과 다르다. 순수하게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 잘 되기를 응원하는 태도 자체가 행복이 된다.


물거품처럼 사라져 가는 돈과 인간관계로 씁쓸하다면, 우선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자. 때로 우리 삶은 아이스크림이 필요하다. 달달한 것! 살이 찔 위험 요소가 있음에도 그 순간 즐길 수 있다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한 번쯤 먹는다고 당장 큰일이야 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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