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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없는 맛집 없다

애가 쓰여야 완성되는 반찬

by 윤작가

"다 수고가 들어가야... 맛은 정성과 손맛이 있어야 가능해."

손에 물들까 장갑 끼고 고구마 줄기 다듬는 어머니

한 마디 하시고는 근처 사장님이 주신 거라며 열심히 다듬는 그녀. 우리 어머니다. 어제 초복이라 친구와 삼계탕 한 그릇하고 오셨다. 어디 갈 때마다 빈 손으로 가지 않고, 집에 있는 강냉이와 무언가를 챙겨 간 모양. 삼계탕 사장님이 밭에서 키운 작물을 가지러 오라고 오늘 새벽 호출.

어머니는 커다란 비닐 속 부추와 고구마 줄기를 다듬기 시작한다. 식구들 반찬이다.



한국인의 밥상이란 정성과 손맛 없이 완성되기 힘들다.

"이거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야 해요. 사진 찍어야겠어요. 반찬 한 가지 만드는데 이처럼 공이 많이 들어가니... 차려진 것만 먹은 사람은 이렇게 수고가 들어가서 나온 음식인지 모를 거예요. 사진 찍고 글 써야겠어요."

이제 어머니는 딸이 사진 찍고 글 쓰고 자신이 만든 먹거리로 매거진을 채우는 것을 알기에 아무런 말 없이 협조 모드.

"찍어라~" 그러신다.

"어머니 손에 물 들겠어요." 지난번 어머니 손이 기억나 말씀드리니, 장갑을 끼고 다시 작업 시작하신다.


솔직히 요즘 세대는 고구마 줄기를 알지 모르겠다. 반찬 다듬다가 민생회복지원금 나오는 날이라, 어머니는 출생 연도 끝자리 맞춰 동사무소 다녀와 카드 들고 와서 속도전. 소상공인을 위한 지원금이라 대형 마트에는 사용 못 하니, 동네 마트나 직영점 아닌 가맹점에서 사용해야 한다.

"돈으로 주면 제일 좋은데..."

동의하지만, 없는 형편에 식비라도 아낄 겸 알뜰하게 쓸 예정이다.

그저께는 동생이 오일장에서 사 온 깻잎으로 장아찌를 만드셨다. 돌멩이 대신 사기로 만든 찻잔 뚜껑을 올려두었길래 사진 찍었다.

어릴 적부터 봐 온 익숙한 찬거리

덥고 습한 여름에는 밥에 장아찌 올려 먹으면 한 끼 해결이다. 건강을 위해서 체질 관리하는 나는 식단 조절 중이라 향신료 종류는 자제해서 알싸하고 매콤한 마늘종 무침은 그림의 떡. 어머니 정성과 손맛 들어간 반찬이라 눈으로 흡입한다.

지금은 어머니만 믿고 요리 못 해도 태연하게 살지만, 언젠가는 직접 하거나 사 먹거나 그런 날이 오겠지.

보기만 해도 청량한 고추 장아찌. 먼 훗날 그녀를 기억하기 위한 방편으로 부지런히 찍고 저장하고 쓰고 남겨둔다.


나란히 놓여있는 그대, 고구마 줄기 무침이여!

수고하여 만든 반찬도 작은 용기에 담아 동생네와 지인까지 챙긴다. 작은 것도 나누면 기쁨은 커지고, 슬픔은 덜어질까? 오가는 정이다. 어머니 손에서 무언가 나가면, 사장님 손에서 무언가 들어온다. "기브 앤 테이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떤 대가를 기대하고 주는 게 아니다. 정이고 사람 사는 즐거움의 방편이다.

편의점 1+1 같은 덤이다. 따라오는 행복이다. 은연중에 보고 자란 나도 쌓아두기보다 나누는 것이 마음 편할 때가 있다.

지난겨울 방학에 이어 이번 방학 때 수업하기로 한 학부모집에 가면서 종이가방에 영양제와 책, 일제 파스를 챙겼다. 새로 산 것은 아니다. 선물 받았는데 다 소화가 안 되는 물품들. 많으니 나누는 거다.


작년에 동생이 심은 나리가 올해 피었다.

SNS에서 자주 보이는 나리가 수줍은 듯 깨어난다. 동생의 손길이 스며든 작품이다. 어머니는 요리에, 동생은 화초 가꾸기에 진심이다. 그럼 나는? 이런 것에 진심이지.

어떤 일이든 애가 쓰인 만큼, 수고가 들어간 만큼. 비록 세상과 사람들이 다 알든 모르든. 자신의 영혼과 마음은 이미 알고 있으니 떳떳할 수 있다. 나이 들어갈수록 남들의 이목과 평가보다 스스로 채우는 에너지와 여유가 중요하다. 자신을 이끌고 가야 하는 사람은 자신이니까.

<<데미안>>에서 저자가 강요하는 것도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카인의 표적을 지닌 사람들. 종교적 교리를 떠나 모두가 인정하는 생각에 무조건 동조하지 말고 스스로 사고하고 용기를 가지고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오늘 누군가와 그 메시지 나누며 수업할 예정.


버스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꽤 먼 거리이다. 덥고 습한 날, 오가는 여정이 조금 두렵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책 읽고 생각을 공유하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라 기꺼이 뛰어든다.


정성 없는 맛집이 어디 있으랴? 수고와 손맛과 애정이 들어가야 식구의 감탄을 부르는 반찬 한 가지가 완성되듯, 우리 인생도 때로 두렵고 막막하지만 용기 내어 과감하게 뛰어드는 운명으로 굴러갈 것이다.

"고구마 줄거리 다듬다 만신이 아파 죽겠다. 오천 원치 사 먹어야지."

어머니는 다 해놓고 힘겨워 결국 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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