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폭우가 쏟아진다. 그쳤다가 다시 쏟아진다. 처음 본 매미가 안방 창문 망에 달라붙어 하룻밤 묵었다. 아침이 되어도 잠에 빠진 건지 움직임이 없어 걱정스러웠다. 죽었나 싶어-그랬으면 붙어있지도 않았을 테지만- 살짝 창을 건드리니 보란 듯이 날아간다. 다시 비가 내릴 줄 알았으면 하루든 이틀이든 언제든 쉬어가라고 두는 건데 미안하다. 성질 급한 나란 인간 때문에 제 몸 하나 피할 곳 없을까 봐.
어제 파마하러 동네 미용실 갔던 막내 조카가 옥수수를 가져왔다. 친정어머니가 농사지은 거라며 조카 손에 들려 보낸 사장님. 동생과 동갑인데 친구 같이 잘 지낸다. 동생이 압력밥솥에 오랜 시간 구운 달걀을 간식 삼아 챙겨준 적이 있나 보다. 답례로 누군가의 수고가 들어간 귀한 먹거리를 주었다.
요리에 큰 관심 없는 나와 동생은 제대로 삶을 줄 모른다. 그냥 삶는 게 아니고 소금 등 간을 해야 하는데... 어머니는 신문지 깔고 껍질 벗기고 푹 삶았다. 알아서 간을 하셔서 노란빛만 있는 옥수수는 조금 짭조름하고, 찰옥수수는 적당하게 고소하다. 체질상 옥수수가 맞지 않지만, 반을 잘라 맛을 본다. 고소하고 은은하다. 요즘은 샐러드용 제주산 초당 옥수수가 유행이라는데, 전통의 대표주자 같은 찰옥수수는 질리지 않아 좋다.
어릴 때 할머니댁에 가면 노할머니 방에 말린 옥수수를 종류별로 볼 수 있었다.
"씨 받으려고 그런 거다."
다음 농사를 위해 씨앗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어머니는 설명한다. 그렇구나. 어릴 때는 몰랐다. 동생이 고추 모종을 심어놓은 야외 화분 텃밭은 대성공! 테라스에서 자라는 '애정'(고추 이름)이는 하얀 꽃만 피다 시들어간다. 열매 하나 맺지 못하고. 애처롭다.
옥수수에 대한 답례로 어제 어머니가 장 봐 온 바나나 한 송이를 미용실에 들고 갔다. 친정어머니처 밥 걱정까지 해준다며 고마워하는 사장님.
지난번 말문 터서 그런지 이제는 먼저 화제를 꺼내 대화가 이어진다. 중화제 바르고 옷에 흐를까 봐 움직이지도 못한 채, 텔레비전을 바라보는데 마침 AI 전문가가 나와 앵커와 이야기를 나눈다.
"AI가 대세인데, 저는 기계치라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사장님의 말에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어제 학원아이가 그러더라고요.
다른 학원 후배가 있는데, 백일장에서 ChatGPT로 쓴 글로 상을 받았대요.
그거 범죄 아니에요?"
사장님도 동의한다. 대학생 딸이 리포트 작성할 때 AI 사용하지 않고 직접 써서 A+ 받았다고. 분석하거나 정보 검색도 아니고, 자신의 언어가 아닌 AI가 쓴 글로 상 받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건 저작권에도 위배되고 지능 범죄라고 생각한다. 나중에는 어찌 될지 걱정이 커진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밥 차려 먹기 귀찮은데, 김밥 만들어주는 기계가 있으면 편하겠다. 버튼을 누르면 치즈 김밥, 돈가스 김밥, 참치 김밥 등. 종류도 다양하게 고를 수 있고 간편하게 한 끼 해결하면 시간도 아끼고 번거롭지 않아 좋겠다고.
그런데 인공지능 로봇이 갑자기 반란을 일으키면?
"주인님, 저도 오늘 월차 좀 쓸게요."
아직 거기까지 상용화 단계는 거리가 멀지만, AI 전문가는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인 투자를 하면 우리나라도 AI 1 위국이 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아직 아날로그 감성 짙은 나 같은 사람은 AI 창작물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진다. 지브리 스튜디오처럼, 스누피의 창안자처럼 직접 그리고 만드는 손그림에 감탄한다. 대세를 거스르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 아무리 유명한 레스토랑이나 이름난 셰프가 만든 음식이라도 집밥처럼 영원할 수 없다. 질리지 않을 수 없다. 돈 들여 사 먹은 음식은 금세 허기진다. 별 거 없는 것 같은 집밥은 든든하다. 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꼭 톨스토이의 책을 읽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알알이 들어박힌 옥수수 알갱이처럼 정스러운 사람들이 주고받는 사랑의 마음으로 숨 쉴 수 있다는 것을. 그리움은 존재가 사라져도 가슴속에 들어앉아 나갈 줄을 모르니까.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눈 맞추고 한 공간에서 같이 호흡 맞춘 시간 속에서 완성되니까. 오늘도 어머니표 부추죽과 꽃 장식 유부초밥 든든히 먹고 글 쓰는 나는 행운아임을 모르지 않는다. 갈수록 "아이고, 다리야~" 하시는 어머니. 천사가 늙어가도 딸은 요리할 생각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음식 사진 찍고 글로 남기는 모든 과정은 그녀에 대한 최고의 찬사이자 그리움의 증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