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그 자체의 소중함

그냥 있어주기만 해요

by 윤작가

올초, 벚꽃이 아름다운 계절 지인의 아버님은 천국으로 가셨다. 아끼는 사람이고, 멘토이자 가족 같은 사람, 동생을 잃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은 그녀는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선교사가 되었다.

그녀의 아버님은 대장암으로 수술을 할 뻔했으나 의사의 부주의인지 실수인지 잘못 건드려 제대로 된 수술도 못 하고 명을 하늘에 맡긴 채 살아오셨다. 뒤늦게 교회를 나가시고 집사님이 되어 언니가 참으로 기뻐했고 조금은 마음을 놓으며 위험 지역을 다녀도 아버님의 기도가 있어 든든하다며 마음을 다잡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암을 지닌 채 수년간 신앙생활을 하시다 작년 말 갑자기 상황이 악화되어 몸속의 모든 걸 다 뽑아내듯이 밖으로 보내시고는 깊은 잠에 빠져드셨다.


언니는 24시간 병원에서 숙식을 하며 간호에 들어갔고. 아니, 더 정확히 말해 간호가 아니라 마지막 시간을 기도로 붙들며 곁을 지키고 있었다. 친할아버지가 전도하신 터라 언니의 아버님은 나를 보고 "그분 손녀라고?" 하시며 반가워하셨다. 자그마한 키, 단정한 매무새. 고이 잠든 아기의 모습으로 순하고 정갈하게 잠들어 계셨다. 기도해 드리기 위해 잡은 손은 나와 달리 왜 그렇게 따뜻한지. 천사 같았다.


언니는 거의 응급실 의료진처럼 아버님 곁에 붙어서 쪽잠을 자며 자신의 이름이 불리면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주물러드리고 창문을 열어 환기시켜드리곤 했다. 어느 순간 이별을 직감하고 함께 봄을 맞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응답이 되어 따뜻한 봄을 함께 맞이하고는...


환자의 가족 중 딸이 말했다.

"비록 반응이 없어도 아버지가 살아 계셔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아버지의 존재, 그 자체가 소중하니까요."

- 가시와기 데쓰오, <<살아 있음>>


책을 읽다, 아무것도 못 하시고 잠만 주무시던 아버님의 존재에 의지한 언니의 어머님과 온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육신의 아버지를 돌보던 언니가 떠오른다. 그리고 저번주도 출석 제로를 달성하신 나의 양들도.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한 사람들.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한. 더욱 겸허하자, 사랑을 표현하자 싶다. 흠, 존재 자체로 소중하지 않은 이들은 또 누구겠는가. 생명의 준엄함 앞에 아무 말도 필요치 않다.


말기 암으로 쇠약해지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다. 걷기와 세수하기는 물론이고 배변과 목욕, 옷 입고 벗기 등을 할 수 없게 된다. 건강할 때는 아무런 불편함 없이 자연스럽게 해 오던 일이 불가능해지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환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결국 환자는 스스로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누워만 있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많은 환자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특히 생활의 모든 면을 가족과 의료진에게 의존하게 되면 환자는 "이런 상황에서 더는 살고 싶지 않다. 빨리 가고 싶다"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런 환자에게는 "힘드시죠?"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나는 가끔 이렇게 덧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은 당신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주길 바라고 있어요. 가족에겐 당신의 존재 자체가 소중하니까요."

- 가시와기 데쓰오, <<살아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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