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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영 Mar 14. 2018

욕심만 남았다

서른의 입구에서


어느덧 서른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히트곡이 왠지 내 노래처럼 가깝게 느껴지면서도 그걸 티내고 싶지는 않은 그런 나이가 됐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생이라는 황홀한 타이틀을 벗게 된지도 벌써 6년차. 여기 저기서 적잖은 시간을 방황한 탓에 이제 고작 1년 차를 넘긴 Y모 회사 사원 나부랭이에 불과하지만 소속과 관계 없이 내 힘으로 밥 벌어 먹기 시작한지도 벌써 6년째다.  


대학생 때만해도 막연히 다른 길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PPL대행사에서 모니터링 알바를 하던 시절,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냐"는 면접 질문에 "숫자적인 일보단 문자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말한 문자적인 일은 뭘까. 지금 나는 회사 홍보팀에서 글을 쓰고, 교정을 보며 사보를 만들고 있으니 어찌 보면 문자적인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치만 '문자적인 일'은 너무 광범위하기에... 지금 하는 일을 생각하고 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면


그러니까 나는 한낮 알바 면접에서 그렇게 되도 않는 이야기를 눈빛을 반짝거리며 할 만큼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거다. 그만큼 패기 넘치고 욕심이 많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만 일하고 싶지 않았고, 어디가서 이게 ‘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좋은 대학', '좋은 회사'로 이어지는 사회가 정해 놓은 룰에 따른 성공이 아닌, 룰을 다르게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다. 조금이나마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그런 일 쪽으로 마음이 쏠렸던 거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세상을 바꾸다니! 청춘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봤음직하다.


그런데 어쩌나, 나는 세상을 바꿀만한 혁명가도 히어로도 아니었다.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멋있는 일을 끝까지 하기에 나는 겁도, 욕심도 너무 많았다. 폼 나는, 있어 보이는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돈도 벌고 싶었고, 안정적이기 원했으며 ‘내 일’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전문적이고 싶었다. 그런데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으랴. 아니 있다한들 그게 내게 온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욕심 많은 나는 원하는 것을 여러 개 나열해 놓고 그 중 하나를 얻고 나서 다른 하나를 쳐다보며 ‘저것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쩌지’하며 겁을 내고 있었다.

  

그렇게 1년, 2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나름 큰 규모의 출판사에 취직했다. 막연한 관심 말고는 별다른 경력 없는 내게 그 자리는 말 그대로 운의 극치였다. (물론 서류, 기획안 심사, 필기 시험, 면접까지 이어지는 채용 과정을 통과한 건 사실이다. 엄청난 빽을 쓴건 아니라는 소리다.) 나는 제법 큰 출판사의 여행팀 에디터라는 타이틀을 얻고 한껏 부풀어 있었다. 티비에서 보았던 열혈 편집자의 모습을 그리면서.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당황스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였다. 후딱, 대충대충 책을 만들고, 아주 빠르게 나왔다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건 뭐지? 원래 이런건가?’ 책이란 모름지기 치밀한 계획과 각고의 노력 끝에 어렵게 완성된 결과라는 내 생각은 철저히 편견이었던 것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론 출판사마다 그리고 책의 장르마다 특징이 다를 거라는 걸 안다. 후딱, 대충대충하는 것 같아 보이는 것 자체가 오랜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이자 능력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치만 결국 나는 재미도 없고 미래가 없다는 생각으로 어렵게 들어간 그곳을 나오고 말았다. 그것도 팀장과의 면담에서 꽤나 충동적으로.


티비나 소설로만 사회를 접하다가 현실에 발을 들여 놓은 많은 사회 초년생이 그렇듯 나도 ‘이건 아니야. 아직은 젊으니 일을 제대로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그곳을 나왔다.   


그런데


꽉찬 나이에 특별한 재주 없는 나를 받아줄 곳이 있을리가.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나는 그 출판사를 나오고 나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아니 아예 팬층이 두터운 유명 출판사 편집자 자리에 용기 있게 이력서을 냈다. 아마도 꽤 이름 있는 회사에 나름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인턴’ 출신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름 정성 들여 쓴 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어떻게 취급 됐을지 눈에 선하다.   


입사 지원과 탈락을 반복하며 3개월을 보내고 서울 충무로에 있는 편집기획사의 인턴 사원이 됐다. 이전에 교통방송에 아르바이트하러 다니면서 인상적으로 봤던 곳이었다. ‘저기는 무슨 회사지? 아늑하고 이쁘네, 저런 곳에서 여러 사람하고 같이 일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후 진짜 거기서 일하게 됐다. 막연한 꿈을 이룬 셈인가.


현실은 막연히 생각했던 그림과는 달랐다. 예쁘다고 생각했던 외관 뒤엔 낡은 건물 내부가 숨어 있었고, 생각보다 좁았으며 축-하고 가라 앉아 있는 회사의 분위기와 낮은 급여 수준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


아씨, 괜히 나왔나.. 나 잘한 거겠지?
그래도 여기는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거라잖아



그때 내 나이 어느덧 스물 일곱. 이제 또 다른데 간다고 하기엔 주변에 염치도 없고 가기도 힘든 그런 때였다. 나는 여러가지로 찝찝한 그곳에서 우선 버텨보기로 한다.

 

내가 속한 곳은 회사 제일 끝층에 위치한 기획실. 사보를 만드는 곳이었다. 내가 처음 맡은 일은 S모 회사 사내보에 게재할 원고 내용을 기획하고 작성하고 교정, 교열을 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 선배들의 지시에 따라 자료 조사, 원고 작성 등의 자잘한 업무를 맡았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본격적으로 업무에 투입됐고 거기서 원고 작성, 취재, 인터뷰 외에도 시안 준비, 포토그래퍼나 클라이언트와의 소통 등 AE 업무 전반을 익힐 수 있었다.


본격적인 업무를 맡고 정확히 1년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웃음을 잃었다. 배워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날마다 마음을 다스렸지만, 몹시도 유약한 나는 한계에 좌절하고 종종 일어나는 동료와의 충돌에 괴로워하며 다량의 눈물을 흘린 후 미련 없이 퇴사했다. 나는 정말이지 내가 거기서 그런 모양으로 꼴사납게 울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손발이 사라질 것만 같다. 3년과도 같은 1년 8개월이었다.


도망치듯 뛰쳐 나와서 6개월을 놀고 무려 29살이란 나이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간 곳이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Y모 회사다. 막연하게 '사보 만든 경력을 살려 회사 홍보팀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


운이 좋은 건지, 아님 … 아, 운이 좋은 거 말고는 없는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내가 여러모로 정말 애매했기 때문이다. 사보를 만들어 보긴 했지만 고작 1년 남짓한 경력이었고, 경력에 비해 나이는 많았고 그래서 경력도 신입도 애~매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여기서 딱 1년 정도의 사보 경력을 가진 사람을 찾고 있었고, 이전 회사에서 너무 힘든 나날을 보낸 나머지 ‘전문성이고 나발이고 그냥 적당한 월급 받으면서 편하게 익숙해지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런 곳이었다. 물론 나는 주제도 모르는 건방이 넘쳐나는 탓에 여기도 올까 말까 고민했지만. 여하튼 들어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이전 회사를 그만 두면서 생각했던 곳과 이렇게 딱 맞을 수 없었다.


긴 과정을 거쳐 나는 지금 여기 Y모 회사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다. 얼마전 입사 1년 차를 맞았다. 어느새 여기에서의 생활도 꽤 익숙해진 나는 발전이 없다는 걸 핑계로 또 다른 곳으로 슬쩍슬쩍 눈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중언부언 길게 쓰게 될줄은 몰랐다.)  


욕심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시 아주 습관적으로 내가 포기했던 다른 것, 이를테면 일에 대한 욕심, 전문성, 자기계발 등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회초년생 때도 분명 욕심은 있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소망, 열정, 진지함 등이 들어있는 그런 종류였는데 이제는 그런 건 다 빠져나가고 그냥 욕심 하나만 덩그러니 남은 것 같다.   


욕심은 사람 꼴을 우습게 만든다. 무능한 박근혜가 대통령 자리를 탐내는 것처럼, 표절이 명백함에도 실력있는 작가가 되고 싶은 욕심에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며 출판사 뒤로 쏙 숨어버린 유명 작가처럼, 욕심 많은 자의 우스운 최후는 이외에도 많다. 그렇기에 나는 욕심 부리지 않으려 한다. 아니면 적어도 욕심을 욕심에서 그치지 않고 능력으로 바꾸고 싶다. 욕심만 많은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



* 수년 전에 쓰고 혼자 보던 글이다. 브런치를 열면서 여기에 옮겼다. 나는 지금 서른이 아니다.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왠지 찝찝하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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