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렌디퍼 Apr 11. 2024

내가 나를 만난 날.

같은 상처, 다른 흉터.

이맘때면 각종 SNS, 카카오톡 프로필에 대국민 약속이라도 한 듯 꽃들이 넘쳐납니다. 평소 꽃이나 자연에 큰 관심이 없던 저도 꽃구경 한번 안 가면 꼴찌 하는 기분이 들 정도니까요. 그래서 이번 캠핑은 벚꽃 캠핑이 되었습니다. 흐드러지게 꽃잎이 휘날리는 아래, 친구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며 왔더랬죠. 혼자 가는 캠핑과 다르게 하루종일 먹고 떠들고, 또 먹고 마시고 그렇게 한 두 달 만에 만난 벗들과 그간 에피소드 그리고 더 취기가 오르면 아주 옛날 먼 옛날, 대학생 신입생 환영회하던 날까지도 거슬러가지요. 만날 똑같은 이야기, 등장인물, 별명을 쉬지 않고 불러도 늘 재밌고 유쾌합니다. 이런 게 추억을 곱씹으며 먹는 최고의 안주거리 아닐까요?


대학교 1학년 때 만나 , 45살을 바라보는 지금.

벌써 25년 지기가 되었네요. 지금은 세 친구 모두 각자의 가정을 꾸려 가족 캠핑을 다니기 시작한 지 3년 정도 되었어요. 안 씻어도, 먼지 투성이어도 이제 익숙한 가족? 같은 친구, 남편,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저는 캠핑을 가면 친구들의 남편들이 많이 도와줘서 많이 편하답니다. 친구남편들이라기보다는 이제 친구만큼 가족 같은 사이가 되어버렸죠.

 



그런데, 한 동안 아주 잠깐동안 마주하기 어려운 시기가 있었어요.

지금으로부터 2~3년 정도 전이었을까요?

뜨거운 저녁 퇴근 무렵, 걸려오는 휴대폰에 친구의 이름이 뜨길래 퇴근길에 수다 떨고 싶었나~하며 무심결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퇴근하냐~'라는 말을 건네기 전에 수화기 너머로 떨리는 목소리를 여전히 기억합니다.


"죽었다네. 죽었대. 참.. 어이없네.. 어쩌지.. 이게 뭐지.."

제 친구는 날벼락같은 남동생의 부고를 그렇게 알렸습니다.



허망한 소식을 듣고 다른 친구에게 전하며 눈물이 터졌습니다. 제 남편 부고소식에도 터지지 못했던 눈물이 그렇게 터져 나왔을까요?


그와 똑같은 선택으로 세상을 등진 친구의 남동생이 가여워서였을까요? 분노였을까요?

정신을 차리고 장례식장을 가는 차 안에서 '나쁜 놈, 나쁜 놈, 나쁜 놈들'을 되뇌며 운전을 했습니다.(지금생각하면 참 위험했던 행동이었네요. 운전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장례식장에 들어서 발인까지 꼬박 함께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저는 분명 친구의 친구로 자리였건만 저는 저를 보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장례식장에 5살 정도 된 아이의 손을 잡고 상주로 있던 남동생의 아내를 보며 제가 보였습니다.


마치 육신에서 영혼이 이탈되어 내가 나를 볼 수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 저를 완전히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고 그제야 악물고 있던 어금니의 힘을 풀고 나를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복수심과 분노만으로 가득 차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 저에게 아주 작은 '연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그 누구에게서 " 네 탓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그저 유가족에게 할 수 있는 "안녕하세요"라는 상투적인 응원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미처 다가가진 못했지만, 그 아내 분 뒤에서 혼자 웅얼거립니다.


정말 당신 탓이 아니에요.


왜, 사람들이 저에게 똑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천만번 이해가 되는 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였으니까요. 변하지 않는 진실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아주 간단하고 심플한 사실이니까요.


이후 한 동안, 친구도 나도 서로의 아픔을 '아프다'말하기가 껄끄러웠습니다. 술이 취한 날이면 그저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부딪치며 눈을 감았습니다. 그게 서로에 대한 마음이었고 존중이었습니다.


같은 상처라도 그 흉터는 다르게 남습니다.


친구는 못난 선택을 한 동생이 아프고, 아리고, 가여웠고

저는 못난 선택을 남편이 원망스럽고, 밉고, 아팠으니까요.


그렇게 비슷한 상처와 흉터를 남기기를 반복하며 우리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캠핑에는 근처에 사시는 친구의 부모님도 오셔서 한 끼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저희들이 온다니 친정 엄마처럼 혼자 사는 저를 위해 갖가지 반찬, 김치를 싸 오셨더라고요. 술 한잔 기울이며 어머님은 저에게 위로를 주시고, 저는 어머님에게 위안을 드리며 주거니 받거니 하며 눈물 한 소도 종종 있었지만 아프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당당하고 , 즐겁게 잘 살아야 된다며 연실 손을 잡아주시며 손주 녀석이 보고 싶다하시더라구요.

"내가 시엄마도 돼주고, 친정엄마도 돼줄게."라는 뜨거운 약속을 남기고 귀가하셨어요. 어머님이 가시고 난 후 여러 여운으로 가득 찼습니다.




'아, 시부모님들도 이렇게 술 한잔하시면 아프게 내 새끼들을 보고 싶어 하실까?'

활활 타들어가는 장작소리와 함께 의문스러운 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전 07화 쭈그러지는 마음, 다림질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