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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렌디퍼 Apr 04. 2024

쭈그러지는 마음, 다림질하기

심폐소생술 성공

겨울이 가기 싫어 생떼를 부리듯 언제나 봄은 꽃샘추위를 거쳐 시작됩니다. 꽃샘추위가 더 춥다고 느껴지는 것은 이미 봄이라는 심리적 기대치와 그에 맞는 가벼운 옷차림, 변덕스러운 기후의 변화들 때문이겠지요. 


우리는 지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어디쯤일까요?


개미처럼 일하고 베짱이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옛날옛적의 쓴소리보다 느리지만 성실한 거북이가 결국은 토끼를 앞질러 승리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보다 워라밸을 즐기며, 부자가 되어가는 세상 만들기 홍수에 빠져버린 우리들. 아니, 저만 그런 걸까요?


건강한 루틴을 만들어 행하는 하루하루가 모여 결국 부자 개미, 승리하는 거북이를 만든다기에 그저 긍정적인 마인드와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갖추려 노력하며 살아요. 그래서 덕분에, 이만큼 모양새로 살아가고 있는 것에 감사한 날도 많습니다.



그런데 가끔 종종, '인생 뭐 있어? 어렵게 살지 말자. 건강하게만 살면 되는 거 아니야?'라는 지인들의 언행에 흔들릴 때도 있고 '맞아, 대충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면 되지.'라고 맞장구칠 때도 있어요. 그러다 우연히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소통하다 보면 어느새 또 타인의 삶과 저를 비교하고 한없이 동굴로 들어가 버립니다. 마치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이 되려는 웅녀처럼 자체적 고립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셀프고립이라 말해놓은 그 시간들이 저를 보호해 주고 지켜주는 안전망이 되더라고요.


먹어선 안될 음식을 꾸역꾸역 먹어놓고, 필요한 소화제로 선택한 나만의 시간들은 그저 독서, 명상이라 쓰고 멍 때리기, 혼자 영화 보고, 침대에서 뒹굴거리거나 혼자 차박을 떠나는 일들입니다.

최근 지인들 모임에 1~2번 참석했다가 제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쭈그러지는 일들이 있었어요.



별것 아닌 일들이고 일상이야기들이었는데 그날따라 소화가 안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만 다른 울타리에서 다른 양들을 쳐다보며 부러워하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행복한 엄마, 아빠양과 결핍 따위는 보이지 않는 건강한 아기양들.


반면 구멍 난 양말처럼 초라해 보였던 내 울타리. 

잘하고 있는 것인가?
잘 해내고 있는 것일까?


죄책감과 열등감이 저를 꽉 채우는 바람에, 온몸에서 열이 나는 신체화 증상까지 나타나더라고요. 한동안 알 수 없는 갖가지 부정적인 마음들이 한없이 지하로 저를 끌고 가는 통에, 더사 올라오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또 털어내고, 엔딩 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죠.


찢긴 구멍이야 어쩔 수 없는 물리적인 환경이지만 다시 세탁을 하고 다림질은 할 수 있잖아요. 다행히도 2~3년 독서를 꾸준히 하다 보니 자연스레 서가처럼 가 꾸며진 제 방에서 저에게 맞는 심사숙고 끝에 스스로 처방전을 내립니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처방은 나를 아끼고 위로하고 응원을 해 줄 수 있는 책이야.

응급실에 가면 응급처치를 해주듯, 제가 주치의가 되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여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축제처럼 살 수는 없지만 매일이 신나고 즐거운 날일수는 없지만 그저 일상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제 늦은 저녁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데 둘째 딸이 첫 중간고사에 대한 목표치를 엄청나게 높게 잡는 거예요.( 아직 첫 시험을 안 봐서 겁이 없다지요.) 그래서 제가 박장대소를 했더니 큰 딸이 그러더라고요.


"엄마가 매일 하는 이야기 있잖아요. 말하는 대로 되는 거라고!"


맞아요. 말하는 대로 세상이 나를 이끌어 줄 거라 믿습니다.

말하는 대로, 내가 나를 운전할 거예요.

오늘도 말하는 대로 살아보렵니다.

"나는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 되길 바라요."

- 또 오해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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