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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블루 Jan 19. 2022

커피

오늘도 커피 한 잔!!

오늘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생각을 정리한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따뜻한 바닐라라떼를 시켰다.


아침 일찍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엄마가 증권사와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어 출근시간 전에 태워다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어제 넌지시 같이 증권사에 가보지 않겠냐고 물어보는 게 아마 혼자 가기가 좀 두려우셨던 모양이다. 나도 증권사 같은 곳은 익숙하지도 않고 어렵다. 하지만 간편 로그인이니 공인인증서 발급이니 하는 것들은 젊은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것들이니 혼자서 방문하는 것이 크게 두려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엄마는 증권사 앱 공인인증서에서부터 막혀버린 것이다. 같이 방문해 옆에서 새롭게 보안카드가 발급되는 걸 기다려줬을 뿐인데도 혼자보다는 안심이 되셨던 것 같다. 내가 마냥 골치 썩히는 딸 역할만 하는 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커피 같은 사람
낙서 - 커피 한 잔

오늘 나는 엄마에겐 커피 한 잔 정도의 따뜻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따뜻한 커피 같은 사람이면 좋을 텐데, 살아가다 보니 나라는 존재가 쓰고 몸에도 안 좋은 커피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험한다. 억지로 따뜻하고 맛있다고 마셔보라 해도 누군가에게는 몸에도 맞지 않고 쓰디쓴 먹물일 뿐이란 사실 말이다. 이런 사실이 나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들기도 하고 인간관계에 주눅 들게 만들기도 한다. 나라는 성질과 성분은 그대로인데 이 성질과 성분이 누군가에겐 참 잘 맞고 좋은 것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겐 죽어도 안 맞을 수도 있다니.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으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 상대가 내 인생에 없어도 되는 존재라면 별로 상관이 없겠지만 누구보다 좋아하고 곁에 두고 싶은 대상이라면 나의 성질과 성분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버리고 만다. 그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권하고 싶었을 뿐인데 권하는 사람도 대접받는 사람도 모두 감정이 상해버리고 말았다.



그저 가만히

사람의 관계란 참 어렵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이런 관계를 맞이할 텐데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억지로 강요하다가는 상대방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의 노력 또한 헛된 노력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헛된 노력으로 감정이 상해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난 늘 이 함정에 빠져버리고 만다.


"나는 따뜻하게 대접하려고 한 건데 네가 거부했어!"


헛된 노력 끝에 오는 건 다른 이에 대한 피해의식이다. 내 노력이 부정당하는 것이 내 스스로 인정이 되지 않기 때문일 테다. 언제라도 난 이 피해의식에 빠져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을 정리하는 이때, 또 이런 순간이 온 때. 다시 이 글을 읽고 정신을 퍼뜩 차리길 바란다.


마시지 않아도 온도는 느낄 수 있다. 그저 가만히, 나는 당신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이제 강요하지 않겠다고. 그저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나의 존재를 인지만 해달라고 가만히 있는 것이 답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억지로 상처 입게 하려는 마음은 없었다. 과도한 애정과 바람으로 서툴게 헛된 노력을 했다. 그러곤 노력했음에도 되지 않는 현실에 내 호의를 거절한 상대방을 탓했다. 하지만 그저 가만히 있지 않았던 나의 잘못이 가장 크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다 알지만 어려운

온전한 커피 한 잔을 대접하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그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인지 그냥 고달픈 삶의 한 부분인 것인지 모르겠다. 데이고 또 데어도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나 스스로가 다시 또 한심해지고 속상해지고 슬퍼지지만 그래도 나의 성분과 성질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따뜻한 커피를 대접하고 싶은 한 사람이다. 이제는 대접하는 것 말고 그저 가만히 있는 것도 배워야 한다. 상대방이 내 온도를 느낄 수 있을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다 식어버리지 않게 온도를 스스로 데우는 방법도 터득해야지. 앞으로도 참 배워갈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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