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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Feb 28. 2024

예민하고 게으른 사람

내 세상속 나는 예민하고 게으르고 이상한,


20대의 전부를 공무원으로 보냈다.


회사는 내 세상의 전부였다.


나쁘지 않은 20대였다. 옆 사람과 똑같이 일을 하고, 인정받으면 기뻐하고, 때로는 악성민원에 시달리고, 실수하진 않았을까 전전긍긍하고.


회사는 내 시야의 전부였다.


대학교도 가지 않고 공시에 뛰어들고, 운 좋게 22살에 이 세상에 발을 들였으니. 생활도, 사람도, 환경도 모두 이 안에 있었다. 점점 연차가 차면서 힘에 부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다른 일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씩 스쳤지만, 금방 흘려보냈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평생직장. 남들이 그렇게 부르는 이곳에서, 내 세상에서 내 발로 나간다는 건 내 전부를 내려놓는 것과 같았기에. 다른 생각을 한다는 걸 내 스스로 인정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20대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처음엔 어지러웠다. 가끔 이명이 들리기도 하고, 예민해지는 날이 많았다. 아니. 사실은 아팠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나 스스로를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침에 눈 뜨는 날이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그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나를 게으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예민하고 게으른 공무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연차가 찰수록 민원응대 하는 업무가 많아졌다. 무서웠다. 점점 나 자신을 건사하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아침에 자리에 앉아 한번 엉덩이를 붙이면 다시 떼는 것이 두려워 화장실조차 가지 않았다. 한번 그 자리를 떠나면, 영영 앉는 것이 두려워질까봐서. 이게 내 평생의 일인데, 무섭다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어느 날인가부터 지하철에서 손이 떨려왔다. 조그만 말소리도 내 옆에 소리치는 것처럼 바짝 다가와 들렸다.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님이 분명한데도 숨이 가빠왔다. 6 정거장만 가면 회사인데, 멈추는 정거장마다 내려 호흡을 고르고 다시 타고, 내리고의 반복인 날이 많아졌다.


내 세상 속의 사람들은 내가 어려서 그렇다고 했다. 누군가는 내 성격을 조금만 죽이면 나아질 거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계속 하다 보면 괜찮아 질 거라고도 했다. 내가 마음이 약해서, 너무 예민해서, 마음에 담아둬서, 그 모든 문장 문장들은 나에게 자꾸만 ‘네가 이상해서’ 로 바뀌어 들렸다. 어느 날은 웃으며 “내가 이상해서 그런가봐요 그쵸?”라고 했더니, “이거 봐. 너가 모나게 생각해서 그렇다니까”



그렇게 예민하고 게으르고 이상하고 모난 생각하는 공무원이 되었다.



점점 사무실에서 쓰러지는 날이 많아졌다. 연차를 끌어다 쓰고, 괜찮다고 생각하며 출근하고, 다시 연차를 쓰고. 금요일 저녁이 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말이 늘어만 갔다. 널브러진 옷가지와 쓰레기와 꽉 찬 싱크대와 그 속의 내가 꼭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취방에서 그것들과 한데 엉겨 붙어 웅크리는 날이 많아졌다.


내가 왜 그럴까. 예민하고 게을러서일까. 그런데 그런 이유로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워도 되는 걸까, 어딘가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날이 늘어만 갔다. 출근길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이는 생각이 점점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겁은 많아서 한참 생각만 하다 다시 웅크리는 날의 반복이었다. 어차피 우리 집은 2층이라서 네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아- 네가 그렇게 무책임하게 차에 뛰어들면 운전자한테 못할 짓이야- 따위의 자기합리화를 계속하면서.


저, 눈물이 너무 나는데 혹시 오늘 진료 가능할까요?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전화를 걸었다.


왜 그랬는지 아직도 모른다. 그냥, 어떻게 해서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예전처럼 옆 사람과 똑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다. 똑같이 일을 하고, 인정받으면 기뻐하고, 때로는 악성민원에 시달리고, 실수하진 않았을까 전전긍긍하는 그런 삶으로.


그렇게 28살의 나는 내 세상 속에서

게으르고 예민하고 이상하고 모난 생각을 하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가진 공무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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