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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모션 Mar 07. 2020

안부

잡담. 5

오랜만에 브런치를 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일정들에 지쳤던지 지호가 방학을 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돌이 되고 싶단 심정으로 겨울을 났다. 머릿속에 간간히 쌓였던 얘기들은 SNS로 올렸지만 브런치를 열기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만큼 브런치에 글을 남길 땐 에너지를 많이 쏟는 편이다. 에너지 쏟은 것에 비해 보잘것없지만서도.

그러다 랜선으로 알고 있는 분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우연히 브런치를 보게 되었다며 도움이 되니 계속 연재를 해주십사 하셨다. 얼떨떨하기도 하고 별 것 없는 글에 감사한 평을 주시니 오늘은 감기는 눈꺼풀에 성냥개비라도 끼워서 뭐가 되든 써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간의 소식을 전하자면 지호는 많이 컸다. 마음도 몸도 많이 컸다. 키는 149cm가 되었고 몸무게는 48.7kg이며 요즘은 작은 일에도 아주 큰 반응을 보이고 다음날 일과에 대해 아주 매우 궁금해한다. 두 달간의 방학을 보내고 앞으로 이 주간의 방학이 더 남은 지금이 되니 집에 있는걸 아니 학교에 가지 않는걸 꽤나 좋아하던 지호는 이제는 하루에 열 번도 넘게 내일도 집에 있냐고 물어본다. 외출할 곳이라곤 집 앞 공원밖에 없기도 하고 정말로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갈 수 없을게 뻔하기에 하고 싶은 게 있는지 되묻지도 못했다.

Photo by Reza Rostampisheh on Unsplash

지호가 조금 더 어렸을 때 방학이면 오전에 외출하고, 점심 외식하고, 들어와서 낮잠 자고, 저녁 산책인 패턴으로 보냈다. 외출이라고 해봐야 키즈카페나 백화점 같은 곳을 가고 저녁에는 대부분 동네 산책을 했다. 아홉 살에 6학년쯤으로 보이는 지호는 가고 싶어 하고, 자주 가던 키즈카페는 더 이상 입장이 불가하게 되었다. 굳이 입장이 불가하지 않은 곳이라 해도 작은 아이들에게 위협적으로 보일 수도 있어서 가지 않고 있다. 캐리 키즈카페와 시크릿 쥬쥬 키즈카페를 너무 가고 싶어 하지만 둘 다 키 제한으로 입장 불가다. 제일 한가한 시간에 가서 사정이나 한번 해볼까 했지만 된다 한들 매번 갈 수 없고 안되면 아이를 데리고 문 앞에서 다시 되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애당초 접었다. 아이의 마음은 타요 키즈카페에 머물러 있는데 더 이상 못 가게 된 이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고도 미안한 일이었다.


"이제 거기는 아가들만 가는 곳 이래. 지호는 언니가 돼서 거기에 가면 안 된데."
"시크릿 쥬쥬 키즈카페는 아가들만 가요?"
"응. 아가들만..."


마음이 아가인 지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알 수가 없다.


요새는 조금 어려운 고민거리도 생겼다. 일 년에 세네 번 내가 대노(大怒)하는 날이 있다. 대부분 지호의 행동은 평소와 같지만 내 눈에 그것이 지속적으로 걸리는 날이다. 화가 화를 부르는 날. 화를 내놓고 나면 꼭 '화가 날 것 같을 때 방에 즉시 혼자 들어간다'라는 쉬운 규칙 하나가 그렇게 지켜지지를 않는다. 후회해 봤자 이미 늦은 일. 돌이켜 지호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아이가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실수한 일은 사과해야 한다.


"엄마가 정말 미안해. 지호가 그만큼 잘못한 건 아닌데 엄마가 화를 너무 많이 냈어. 미안해"

 

이럴 때면 지호는 늘 "엄마가 화냈어. 슬펐어."라고 하곤 뒤돌아서 다시 잘 놀았는데 요즘의 지호는 조금 변했다. 슬펐던 순간을 되뇌기 시작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낮은 톤으로 얘기한 말부터 화낸 일까지 문득문득 얘기를 꺼냈다.

해외연수 갔던 운동 선생님과 한 달 만에 수업을 한 후 선생님은 지호가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네요. 조금만 동작을 잘못해도 지호가 틀렸어 라며 풀이 죽어요 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지호는 요 근래 작은 실수에도 큰 실수처럼 자기 탓을 하고 기가 죽었다. 쓰기가 조금만 틀려도 "지호가 틀렸어"하거나 물을 먹다 흘리면 "지호가 물을 흘렸어" 양말을 잘 못 신어도 "지호가 잘못 신었어" 등등...

거의 떼가 없는 지호는 피곤할 때나 짜증을 조금 부리는데 요새는 짜증을 부리고는 "엄마 지호가 짜증을 부렸어요" 라며 내 몸에 찰싹 붙어 나를 안고 몸을 비비고 뽀뽀를 마구 해댄다. 그런 모습이 짠하기도 하지만 잦아지니 당황스럽기도 하다. 가끔은 내 죄책감을 터트리려는 거 같아 더 냉정하게 받아내기도 하는 못난 어미다.


사실 나는 엄한 엄마다. 브런치에 묻어나는 줄줄 흐르는 다정함보단 엄하게 지호를 대하는 일이 많다. 잘못한 걸 스스로 알아야 하고, 잘못한 걸 시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나의 훈육 방향이다.

"지호 뭘 잘못했지"
"지호가 떼를 부렸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스스로 잘못한 걸 알고 말하고 반성하게 하기 위해 참 많이도 혼냈다. 솔직히 이렇다 보니 지호는 사회생활에서는 칭찬받는 아이다. 그렇지만 그 안에 꺾여가는 지호의 자존감과 엄마의 사랑에 대한 불안함을 놓쳐버렸다. 균형을 잘 잡았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어려웠을 뿐이다.

Photo by Shuto Araki on Unsplash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모두 장애 특성으로 이해받기엔 세상은 그렇게 이해심이 넓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쳐줄 수 있는 건 고쳐줄 수 있을 때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부모의 몫이라 여기고 있다. 지인인 중학교 특수교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중학생 이후엔 장애 친구들의 약점을 고치려고 애쓰지 않는다. 강점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약점은 더 심해지지만 않게끔 지도하신다고 하셨다. 물론 선생님마다 지도방향이 틀리기에 그것이 모든 특수교육의 방향이다 라고 말할 수 없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도 어릴 때 나쁜 버릇은 고쳐주려고 하던 것이 눈치 보는 아이를 만들었다. 아마도 당분간은 지속될 것 같은데 선생님과 의논도 해보고 책도 좀 찾아봐야겠다.


내 글을 읽으시는 장애 아이를 둔 부모님은 어쩌면 나를 아주 잘하고 있는 모범 케이스로 볼 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매번 이렇게 실수하고 넘어진다. 부딪혀서 깨닫고 고쳐나간다. 그 안에서 이겨내는 것은 항상 지호다. 부모로서 모든 게 내 잘못 같고 한없이 쪼그라든 날이 오늘이라면. 다 괜찮다. 안 그런 사람 없다. 걱정 마시라. 우리 모두 열심히 살아내고 있으니 그저 내일 다시 또 열심히 살면 된다. 이제 안으면 턱 밑까지 파고든 지호와 나도 매일 열심히 살아보겠다. 다들 안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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