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새하얀 벚꽃나무 아래다. 눈이 부시고 시리도록 하얗다. 나들이도 못하는 이때에 심굴 궂게도 매일매일이 새파랗고 하얗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보고 있자니 눈이 뻘게지고 코끝이 씰룩거린다. 이렇게 예쁜 날 엄마와 나는 예쁘지 않았다.
엄마와 나 둘 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투닥거리고 있다. 우리가 울고 서운해하며 서로의 속을 긁어간다 한들 서로가 원하는 행복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또 안다고 해서 쉽게 놓을 수도 없다는 것 또한 안다. 결국 다 아는 얘기. 돌고 돌아도 제자리인 이야기. 몰라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몰라서 서운한 것이 아니다. 그냥 엄마는 노인이 되어가고 난 그 사실이 슬플 뿐이다.
이사 이야기로 시작된 싸움이다. 갑자기 결정된 시골 주택으로의 이사 이야기에 엄마는 덜컥 우리도 같이 살자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한 달 반 동안 일을 못하게 된 엄마는 아버지와 매일을 보내느라 지쳐있었다.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 스트레스를 푸는 엄마에겐 견디기 힘든 날들이다. 그렇다고 면역력이 전혀 없는 아버지에게 위험한 시기에 오빠네나 우리가 방문하는 것도 위험하니 더더욱 고립된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에게 아버지와 같이 살라는 말을 저렇게 쉽게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다니 당황스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는 상극이었고 그건 아버지가 치매를 앓아 엄마가 말하는 안쓰런 사람이 되었다고 한들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엄마의 반응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자 엄마는 더 서운한 표정을 드러냈다. 지금 엄마가 이사하기 어려운 이유를 얘기했지만 엄마는 기분만 나빠했다. 찝찝하게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는 주택 뒤에 산이 있으면 비가 왔을 때 휩쓸려 갈 수 있다고 말하곤 끊었다. 한숨과 짜증이 머리 뚜껑을 열고 폭죽처럼 터져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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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본인 입장만 얘기하고는 이런저런 이유에도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린다. 그러다 결론은 나 혼자 감당해야 할 짐이니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곤 귀를 닫아버린다. 속상하게 왜 그러냐고 말하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요새 네가 이상하다며 여분의 폭죽까지 쏴준다. 엄마가 이러지 않았는데 점점 대화가 되질 않는다. 치매인 아버지를 간호하니 힘들어서 그렇겠거니 해도 늘 긍정적이었던 엄마의 변화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속상해하며 씩씩거리고 있자니 신랑이 한마디 한다.
엄마도 이제 정말 늙어 가는 거야. 이젠 그냥 이해해야 돼.
지호가 커가고 익숙해져 어미다운 어미가 되어가느라 나의 어미가 아이가 되어가는 줄 몰랐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지호를 받아들이고 그냥 이해하기까지 8년을 보냈는데 이제 나의 기댈 곳이던 엄마까지 이해해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늘 밝던 엄마가 코로나 한방에 폭싹 늙어버렸다. 어쩌면 엄마도 여태껏 버티고 있었으려나. 내가 눈물을 흘리면 더 놀라며 밝은 아이가 왜 그러냐고 해서 울지 못하게 하더니 내가 똑같이 엄마에게 말하고 있다. '엄마 요새 왜 그래 밝은 사람이. 엄마 목소리만 들으면 같이 우울해져. 다 힘든 시기니까 조금만 버티고 기운 내'
맘껏 울고 힘들다 하지 못하게 하는 엄마가 그때는 조금 서운했는데 이제와 내가 그 말을 뱉고 보니 알 것 같다. 불안한 것이다. 저 사람이 무너질까 봐. 무섭고 두려운 것이다. 다 알겠는데... 마냥 이해하고 받아주는 그게.. 그 별거 아닌 일이 이렇게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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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주간보호센터에 보내는 것이 지금 엄마와 내가 넘어야 하는 산이다. 짠하고 가족이 붕괴되는 것 같다는 엄마와 엄마의 숨통이라도 트여주고자 끊임없이 설득해야 하는 나. 결정은 엄마 몫이란 걸 알면서도 설득해야 만 하는 이유. 미끄럼틀 위에 앉아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을 때 분명 지호에게 좋은 일이란 확신을 가지고 밀어줄 수밖에 없었던 나는 또 엄마를 그렇게 해야 하는 시기에 왔다. 누군가의 완전한 희생으로 가족이 유지되길 원하지 않는다. 조금은 서글프고 걱정되더라도 받아들이고 살다 보면 또 그것이 행복이 될 것이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지금 당장 불행하지 않다면 우리는 행복한 것이라고. 완벽한 행복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행복해지는 것이다. 인생의 중반을 넘어 노년이 된 엄마는 이제 용기도 부족하고 자식을 이기는 에너지도 없어졌다. 나도 그런 엄마가 서글프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 오늘도 싸우고 왔지만 다짐하기 위해 적어본다. 다 아는 얘기지만 되새기고 적어본다. 사는 게 다 그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