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의 나와 지금의 나
칠흑같은 구름이 떠있던 저녁
습지에 이슬비가 내렸다.
촉촉해진 펄은 갈대의 다리를 움켜잡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눈을 붙잡았다.
무르고 보드라운 갯벌에 난 숨구멍을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옷과 손에 바른 진흙을 만지며
미끈거린다며 깔깔댔다.
갯벌에 푹 빠진 발을 쑥 빼내며
아프지 않게 넘어졌다.
터줏대감 칠게들이 빽빽한 갈대 사이를
요리조리 지나간다.
이슬비가 굵어질 무렵
깨끗한 발로 순천만을 나섰다.
- 자작시
갯벌 낚시에 빠진 아빠와 10살 먹은 나는 일주일에 1번씩 서해안으로 향했다. 밤과 새벽을 가리지 않고 양동이와 삽을 들었다. 조개 캐기에 싫증이 나면 맨손으로 낙지를 잡았다.
집에 조개와 낙지가 넘쳐나 아침에도 산낙지를 먹었다. 거실 한구석에는 큰 대야에 담긴 조개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왔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하늘과 갯벌이 구분되지 않는 그 밤이 좋았고 갯벌에 털썩 앉아 바라보는 달과 별은 작고 예뻤다. 갯벌 냄새와 조개 맛이 지겨워질 때까지 아빠를 따라다녔다.
갯벌에서 힘을 다 쓰고 옷이 엉망진창이 되어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다음 날은 학교를 가지 않는 일요일이며 빨래와 뒤처리는 부모님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34살 먹은 지금의 나는 갯벌 낚시 후 잡은 조개와 낙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더러워진 옷은 버리고 가는 것인지, 애초에 버릴 옷을 입고 가는 것인지 고민한다. 갯벌에 빠지지 않고 건너는 방법을 찾는다.
10살의 내가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순수한 재미를 느끼거나 든든한 가족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다. 오직 흥미와 즐거움으로 행동하는 나와 가족을 무기로 전진하는 나는 아이가 된다. 겁 없이 넘어지고 후회 없이 잠든다.
크고 많은 조개를 캐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갯벌에 발이 빠지면 주저앉아 천천히 발을 빼던 10살의 나를 깨워 본다. 그저 즐길 시간이 왔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