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글리 Sep 07. 2019

커서 '무엇'이 되고 싶지 않다면

한 우물을 팔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랩소디

꿈이 꼭 직업이어야 하나요?


어렸을 때 '넌 커서 뭐가 될래?' 라는 질문이 그렇게 난감할 수가 없었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어른들은 특정 직업을 기대하고 묻는 거지만,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친구들은 과학자, 의사, 선생님, 국회의원 같은 직업을 말하는데, 나는 한 번도 특정한 직업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번도 어떤 직업을 꿈으로 삼아본 일이 없었으니까. 한번은 모 사회적기업 대표를 인터뷰 하는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전 어떤 직업을 꿈으로 꿔 본 적은 없어요. 대신 하고 싶은 ‘일’이 있었죠. 

제가 하고 싶은 건, ‘세상을 바꾸는 일’이었어요."


이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 그래, 저거다! 저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  흔히 꿈이나 천직이라고 하면 특정 직업을 생각한다. 수많은 직업 중에 내게 가장 잘 맞는 직무나 직업 하나를 골라야 하는 걸로 생각한다. 천직을 찾아서 나의 인생을 헌신하고 그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관심분야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꿈이 직업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천직이 없는 이유


작가이자 예술가인 '에밀리 와프닉 Emilie Wapnick' 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에 단 한번도 제대로 답해보지 못했다. 그러기엔 너무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좋아하는 게 생기면 뛰어들어 배우고, 익숙해지면 곧 다른 관심사로 이동해갔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패턴을 인지하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느 것에도 붙어있지 못하는 스스로가 불안했다. 내가 너무 산만한건 아닐까? 버티면 전문가가 될 수 있는데, 내가 너무 태만한 건 아닐까? 내가 혹시 성공을 두려워하는 건 아닐까?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고.


하지만 그녀는 곧 알게 되었다. 문제는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천직을 찾고 거기에 매진해야한다는 사회적인 믿음에 있다는 걸. 그런 믿음 안에서는 다양한 취미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포용할 틈이 없다는 걸 말이다.   


"우리 문화는 천직을 찾는 것에 대해 과도하게 낭만적인 견해가 있어요. 운명, 천직이라는 개념때문에요. 운명적인 일을 찾아내 인생을 헌신해야한다는 생각이죠. 
이런 틀 안에서는 여러분 같은 사람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고독하게 느낄 수 있고, 목표가 없다고 느낄 수 있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여러분에게는 문제가 없습니다.
당신은 ‘다능인 Multi-Potential-ite’ 일 뿐이니까요."

 


그녀는 '다능인 (MultiPotentialite, 멀티포텐셜라이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 다능인은 한마디로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길 좋아하며 도전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에밀리는 다능인에게는 3가지의 큰 강점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아이디어 통합능력 Idea synthesis. 

두 개 이상의 분야를 결합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으로, 여기에서 전화기와 인터넷을 결합한 아이폰과 같은 혁신이 탄생한다. 

둘째, 빠른 습득력 Rapid learining . 

이들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덜 두려워 하고, 경계를 넘나드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매우 빨리 배운다.  

셋째, 적응력 Adaptability. 

주어진 상황에서 뭐든 필요한 걸로 변할 수 있는 능력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 시대에 매우 필요한 능력이다. 진득하지 못하고 깊이 있지 못하고 목표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어떤 상황에서든 필요에 맞게 변할 수 있다.

 


자신에게 맞는 방향으로 가기


나는 에밀리와 같은 다능인이다. 지금껏 20가지가 넘는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정식직업만도 바리스타, 연구원, 기자, 컨설턴트, NGO 활동가, 작가, 강연가, 해외구매대행 등등 10여 가지에 육박한다. 취미생활은 뭐, 셀 수도 없을 만큼 많고 다양하다.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한 우물 파라"는 귀딱지 앉도록 들었다. 사람들은 내게 오래 버티면 전문가가 될 수 있는데 인내심이 없다고 혀를 끌끌 찼다. 


분명 하나를 깊이 파는 것을 더 좋아하고 잘 맞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그러기엔 나의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너무 강하다. 나는 하나를 선택해 깊이 파는 것 것보다, 수많은 선택지를 두고 관심사에 따라 다양하게 해보는 것이 더 좋다. 괌심사에 따라 가능한 다양한 우물을 파서 그를 연결시키는 것.  이건 내가 누구보다 잘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사회는 전문가를 권장하지만, 전문가가 중요한만큼 다능인도 중요하다. 최고의 팀 중 많은 팀들이  전문가와 다능인이 짝을 지어 이뤄진다. 전문가는 깊이 파고들어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다능인은 다양한 관점과 광범위한 지식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 혁신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아름다운 협력이다. 관건은 전문가든, 다능인이든 '자신에게 맞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직업은 내가 아니라, 내가 하는 선택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선택은 여러 개가 될 수 있다. 왜 안되나? 과거 르네상스 때는 여러 분야에 능통한 것을 이상적으로 여겨, 한 명이 여러개의 직업을 갖는 게 흔했다. 사회가 다능인을 포용했고 그렇게 되도록 장려했다. 미켈란젤로만 하더라도 화가에 조각가, 건축가, 시인을 겸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한 술 더 떴다. 그는 화가, 조각가, 과학자, 도시계획가, 건축가, 요리사, 해부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등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 


 에밀리에는 다능인이 가진 능력은 시야를 좁히도록 압박받으면 잃을 수 있는 능력이며. 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게 장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하나의 길을 결정할 수 없으며 결정해서 안되기 때문이다. 



"사회는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단순히 전문가가 되라고 권장하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따르지 마세요. 무엇보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인생과 진로를 설계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열정을 받아들이고 호기심을 따라 가세요.
그 교차점을 과감히 모험하세요.
지금의 세계가 우리를 필요로 합니다." 


이거, 참 아름다운 선언이 아닌가!


매거진의 이전글 직업 대신 '라이프워크'를 꿈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