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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Aug 18. 2020

글을 쓰다 주눅이 든다면, 알아둘 것

대가에게 쫄지않는 법 (feat. 이현세 만화가)

을 쓰다보면, 주눅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쓰려고 한 주제를 이미 책으로 내었거나, 기막히게 잘 풀어낸 글을 만나면, 더 이상 쓰고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나보다 더 나은 스펙으로, 나보다 더 힘있는 말로 그들은 이미 내가 할 이야기를 적어두었다. 갈수록 의욕이 떨어지고 주눅이 들었다. 나까짓게 이거 써서 뭐하나.     


살면서 우리 모두는 한 번은 그런 좌절감을 느낀다. 같은 분야에서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마주하게 될 때, 좌절하고 의욕이 사라진다. 이런 주눅든 마음에작가 이현세가 선물같은 이야기를 해준다. 그는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로, 새학기마다 학생들에게 이를 강의한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천재와 싸워 이기는 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천재와는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말 것”     

그는 만화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만화계에 입문하게 되었고, 자신의 재능도 도토리 키 재기라는 걸 알았다. 그 중에 한 두명의 천재를 만났다. 그가 매일 날밤을 새디시피 그림을 그려 원고를 만드는데,  천재는 한 달 내내 술만 마시고도 며칠 휘갈겨서 가져오는 원고로  그의 그림을 휴지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타고난 재능은 원망하고, 이 익물고 경쟁도 해봤지만 갈수록 상처만 커질 뿐이었다. 점점 만화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고 작가가 된다는 생각도 멀어졌다. 자신의 분야에서 추월할 수 없는 천재를 만난다는 건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만화에 미쳐 있었고 그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리고 천재를 이기는 방법을 터득한다.      


둘째, “해 지기 전에 한 걸음만 더 걸을 것”      

“천재를 만나면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상처 입을 필요가 없다. 작가의 길은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천재들은 항상 먼저 가기 마련이고, 먼저 가서 뒤돌아보면 세상살이가 시시한 법이고, 그리고 어느 날 신의 벽을 만나 버린다. 인간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신의 벽을 만나면 천재는 좌절하고 방황하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리고 종내는 할 일을 잃고 멈춰서 버린다. 이처럼 천재를 먼저 보내놓고 10년이든 20년이든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 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페이스를 잃지 않고, 나만의 것을 만드는데 집중하기


사실 이현세 작가는 천재의 반열에 오른 인물로 꼽힌다. 동네에서는 그림을 제일 잘 그렸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 들어서자 그는 자신의 재능이 그저 그런 재능 중 하나라를 걸 알게 된다. 그를 극복하려고 하루 2~3시간 자면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천재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고 했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일종의 자기 도취도 필요했다. 내가 만화를 그릴 때는 최고의 작품을 그리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최고를 그린다는 마음으로 100% 몰입해야 최고의 작품이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화를 잘 그리고 싶다면, 매일 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10장의 크로키를 하면 된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매일 매일 메모하고 쓰면 된다.  그렇게 10년을 하면 못할 게 없다.

1등 작가, 최고 작가가 아니라 ‘나만의 것’을 찾아가면 된다. 그는 누구에게도 없는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켰고, 전에 없던 새로운 캐릭터인 ‘까치’ (공포의 외인구단) 를 만들어냈다.      



공포의 외인구단 까치는 이현세 작가의 페르소나와 같다.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 전에 없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데 그게 바로 '까치'였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잠들기 전에 한 장의 그림만 더 그리면 된다.
해 지기 전에 딱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어느 날 내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든, 산중턱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바라던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중에 그는 천재들에게 없는 자신의 재능을 알게 된다. 바로 매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지구력이었다. 그는 지구력으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냈다. 가끔 지구력을 가진 천재를 만나게 되는데 그런 천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며, 같은 시대를 산다는 것만 해도 가슴벅차게 행복한 일이라고 이현세 작가는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 천재의 작품은 접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영감을 준다. 고마운 존재들이다.

 


사마의가 제갈량을 이긴 방법, "참고 기다리면 나의 때가 온다"

    

삼국지에 보면 사마의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사마의와 제갈량은 종종 라이벌로 비유된다. 하지만 사마의는 제갈량을 싸워 이기려 하지 않았다. (제갈량과 싸워 이기려던 주유는 피를 토하며 죽었고,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크게 패한다) 그는 제갈량이 자신보다 기량이 월등하다는 걸 알고 쿨하게 인정한다. 그는 제갈량에게 주눅드는 대신 자신만의 강점에 집중한다. 제갈량이 건강을 돌보지 않고 일을 너무 많이 한다는 걸 알고 때를 기다린다면 자신에게 기회가 올거라고 생각한다. 불세출의 천재 제갈공명이 수명이 다해 죽을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렸고, 마침내 천하를 차지한다. (그는 같은 연배의 제갈량보다 17년을 더 살았고, 그의 후손이 천하통일을  이루게 된다.)      


사마의와 제갈량 (출처: https://steemit.com/)


살다보면, 뛰어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하지만 주눅들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묵묵히 내 길을 가면 된다.  굳이 그들과 경쟁하지 말고, 비교해서 나의 페이스를 잃지 말아야 한다.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먼저 가시도록 비켜주자. 그리고 나는 어제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된다. 조셉 캠벨은 “이 세상에 평범한 사람은 없다”고 단언한다. 모두가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고, 그 개성은 너무 고귀하다. 내가 집중할 건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나만의 것’을 계속 찾고 갈고 닦는 일이다. 그렇게 한 걸음씩 걷다보면 인생길에서,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날을, 나의 때를 기다린다.



위는 2005년 2월 22일자 서울신문에 실린 “[이현세의 만화경] 해 지기 전에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을 참고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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