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글리 Sep 04. 2020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


지난 여름, 태풍이 휩쓸고 간 뒤 근처 공원으로 여느때처럼 아침 산책을 나갔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바람이 제법 불어서 나무가 휘청일 정도였습니다. 간밤에 얼마나 바람이 세찼는지  3미터가 넘는 큰 나무가 뿌리째 뽑혀 있더군요. 바닥에도 부러진 잔가지와 나뭇잎이 어지러이 나뒹굴었습니다.



가지 꺾인 것만 보면 안타까울 수도 있지만, 사실 나무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나무는 가지치기를 해야 잘 자라는데, 태풍이 한번 지나가면 잔가지가 다 꺾여나가는 통에 자연적으로 가지치기가 되거든요. 덕분에 남은 가지들은 더 튼튼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태풍은  '자연의 청소부'라고도 불립니다.  그러니 이렇게 태풍이 와서 한번씩 크게 흔들리고 불필요한 것들이 꺾이고 사라지는 과정도 성장에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 내면에도 태풍이 몰아칠 때가 있다


 살다보면 내면에도 태풍이 휘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극심한 슬럼프에 빠질 때죠. 그럴 때면 마음은 마치 태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세차게 흔들립니다. 이유도 모른 채 마음이 온통 뒤죽박죽 되고, 온 몸은 힘이 쭉 빠지면서 무기력해집니다. 이유도 모른채 눈물도 납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흔들리는 걸 무척 싫어했습니다. 마음이 자꾸만 흔들리면 불안해지니까요. 그런데 구본형 선생님이 제게 이런 말을 해주시더군요.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건 자기 원칙을 가지기 위한 강화 과정이니까요. 흔들림 없이 철학이 만들어지지 않아요. 갈등을 겪고, 다시 생각하고, 깨달음을 얻고 매진하고, 또 시달리고, 그리고 다시 정신 차리고 하여 자신의 철학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흔들리면서 나만의 철학이 만들어지고, 흔들리면서 강해진다..... 


오늘 아침, 세찬 바람에 기둥까지 흔들거리던 나무를 보면서 이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가끔 모질게 흔들려봐야 뭐가 진짜인지, 뭐가 내 것인지 알게 됩니다. 흔들린다는 건, 내 안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이 갑자기 그 의미를 잃어버릴 때, 온 힘을 다해 추구하던 목표나 꿈이 갑자기 그 자리를 잃어버릴 때, 서로 다른 가치가 힘을 겨룰 때 극심한 슬럼프가 옵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수십번 그런 슬럼프를 맞으며 떠나보냈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내면에 태풍이 휩쓸고 가면, 내면의 뭔가가 함께 휩쓸려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희한하게도 이전과는 세상이 조금 달라져 보였죠.  그렇게 세차게 흔들리며 20대와 30대를 지나왔더니, 정말 가져가야할 것들만 남게되었습니다. 


흔들리는 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지금, 불필요한 것들이 떨어져나가는 중이니까요. 오래된 것을 떠나 보내는 데는 슬픔이 따르고, 새로운 것을 맞는데엔 불안이 일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내면의 태풍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내 안의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사이에서 말입니다.  성장하려면 결국 불필요한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하고, 나다워지려면 내가 아닌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잔가지를 툭툭 떨궈내고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말끔한 얼굴로 서 있는 나무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 남은 것이 진짜다.
그걸 가지고 가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상황에서도 손쉽게 멘털관리하는 3가지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