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지 마세요

까레이쯔 이야기

by 김글리

누구, 이들을 아시나요

고려인(高麗人).

1860년부터일제 말까지 농업이민 항일독립운동, 강제 동원등으로 러시아 지역(구소련) 으로 이주한 교포를 통칭하는 말이다. 러시아어로는 '까레이스키'라고 한다. 당시 만주로 건너간 사람들은 조선족, 연해주로 간 사람들은 고려인으로 구별한다. 어쨌거나 내게 고려인은 아프리카처럼 머나먼 곳에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처음으로 고려인들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느껴본 건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을 통해서였다.


대한제국 말, 연해주는 우리 동포 20여만명이 살았던, 중요한 독립운동 기지였다. 그곳에는 홀몸으로 혹은 가족을 이끌고 의병활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독립투쟁을 준비하고, 독립자금을 꾸준히 모았다. 처음에는 이들은 블라디보스톡, 연해주등지에 자리잡고 적응해서 잘 살았다. 황무지나 다름없던 극동지방을 맨몸으로 일구었던 그들을 두고 러시아 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고려인들은 바위에 올려놓아도 살아난다.", "고려인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먹을 것이 있다."

(<길: 조정래 사진 여행>, 조정래 인용)


눈물의 강제이주 길

1937년, 이때 동포들에게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다. 스탈린은 고려인이 일본 첩자가 될 수 있다는 명목으로 이들을 아주 척박한 중앙아시아 등지로 강제이주를 시키고 만 것. 예고도 없었다. 지식인은 처형하고, 나머지는 화물차와 가축운반차를 개조해 짐짝처럼 실어날랐다. 매서운 시베리아 날씨 속에서 6천 km를 이동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한동안 이에 대해 발언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1800년대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들이 겪었던 참혹한 강제 이주 "눈물의 길 Trail of Tears"에 비견될, 처참한 길이었다.

고려인 강제이주 경로


내버려지다시피 했지만, 고려인들은 특유의 부지런한 천성으로 아무것도 자랄 수 없을 것 같은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맨손으로 관개 시설을 설치하고 벼농사를 시작했다. 황무지를 개척하고 집단 농장을 경영하는 등 저력을 발휘해 소련 내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가장 잘 사는 민족으로 뿌리내렸다. 결국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본래의 삶의 방식을 회복했다. 하지만 수십년 간 한국어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그 다음 세대는 한국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정착후기 고려인들 (디아스포라 http://www.diaspora.co.kr/ 참조)



나를 잊지 마세요

나는 중국, 키르기즈탄을 거쳐 막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한 참이었다. 한국에 있을 땐 너무나 먼 곳이었던 그 곳, 우즈베키스탄에 온 김에 중앙아시아에 있는 고려인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다 운 좋게도 우즈벡에서 코이카(한국 국제 협력단, KOICA)로 활동하는 언니의 연줄로 한 고려인의 손주 백일잔치에 초대받았다.


건물의 모임공간을 대여해 음식을 펼쳐놓고, 노래방 기계도 두고 우리처럼 잔치를 벌였다. 안디잔(우즈벡의 동부 도시)에 사는 고려인들은 다 모인듯, 줄잡아 50~60명은 넘는 고려인들이 참석했다. 머리도 검고 얼굴도 동글납작하고 눈이 쭉 찢어진게 분명 한국인인데, 개 중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러시아말로 대화하고 있었다. 나는 '스파시바' 말고 러시아말은 전혀 할 줄 몰랐기에, 조금 어색하게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잠시뒤 나온 잔치음식에 놀라고 말았다.

고려인 백일상 차림


찰떡, 기지떡이며, 고사리무침, 콩나물 무침, 갈비탕 등 한국 잔치음식과 굉장히 비슷했다. 아마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최선을 다해 한국식 잔칫상을 꾸민듯 싶었다. 심지어 고사리는 한국에 있는 아는 사람을 통해 공수했다고 했다. 이건 채소가 드물고, 주로 양꼬치에 만두, 빵이 고작인 우즈벡의 식사차림으로도 과한 것이었다. 순간 가슴이 찡-해왔다.


이곳 고려인들은 현지에 동화되길 거부하고 자기들만의 문화를 지키며 산다. 결혼도 고려인들끼리만 할 정도다. 그래서 더 이방인같은 존재다. 그 전통을 지키기 위해 이들이 뿌렸을 땀과 눈물을 생각하니, 쉽사리 이 음식들을 삼킬 수가 없었다.


슬라브와 이슬람 문화까지 뒤섞인 이질적인 문화권에서 오래 살아오면서도 150여년 가까이 코리언으로 살아온 사람들. 고려인은 스스로를 ‘까레이쯔(한인)’이라 부르고 그렇게 행동해왔다. 중앙아시아에서태어났지만 출생증명서에도 여권에도 한인이라 기재되어 있다. 비록 3, 4세대로 내려오며 이미 한국말은 다 잊었지만, 여전히 먹거리며 한국의 풍습을 지키고 살아간다. 고려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된장이 있고, 고추장이 있고, 간장이 있었다.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등에 지고서 고국으로부터 잊혀진 채로, 자력으로 살아남은 사람들.

고려인들. 마치 나와 같은 가족인데, 너무 멀리 떨어져 오랫동안 보지 못한 삼촌 고모같았다.

나는 멀리서만 바라보며, 안타까움만 가득한 채로 우즈벡을 떠났다.


아, 그들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우즈벡 한 전통시장에서 고려인 아주머니가 간장, 된장, 고추가루 등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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