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조태호 Jan 31. 2019

단 하나의 선

1-4. 선택

어떤 이들은, 

선악과가 어떻게 생긴 열매였을지를 고민한다.

대게는 사과 정도로 생긴 것으로 마무리된다.


어떤 이들은 처음부터 없었으면 좋을 선악과를 만들어 놓고 이를 따먹게 한 을 비난한다.

얼토당토않은 설정을 비웃는 그들에게 이 사건은 구전 설화 정도의 의미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내게는 의미가 다르다.

선악과는 선택을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을 완전하게 만들고 파괴할 수 있는, 우리 인지의 정도를 넘어선 그 어떤 절대자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가 우리에게 '선택'이란 걸 허락한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나는 딥러닝을 공부했다. 딥러닝은 작은 인공지능을 만드는 거다. 그런데 그동안 딥러닝을 이용해 사진 판별에서 질병 예측까지 아무리 많은 'AI'를 창조했다 한 들 그것을 생명이라고 할 사람은 없다. 필요에 의해 의도대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로봇이 아니라 '생명'을 만들려면 그래서 그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주어야 한다.


내가 만든, 내 형상을 닮은 것이, 나처럼 말하고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행동하는 것을 본다면, 이를 만든 창조주인 나는 마치 자식을 보듯 기쁠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고 이를 사랑해도, 하나는 알려 주어야 한다. 내가 널 만든 걸 기억하라고. 다른 건 다 해도 좋으나, 나와 너의 관계를 잊지 말라고.


이것이

선악과가 의미하는 본질이라면,


그 단 하나의 선을,
아담은 너무도 쉽게 넘어 버렸다




1-4. 선택




"어제 장학금이 입금되지 않아서요.."


아침 9시, 대학원 사무실을 찾아가 했던 질문이다. 외국인 유학생에게 불친절하기로 소문난 사람이 외국인 유학생 담당자다. 장학금이 입금되지 않았다는 질문에 뭔가를 뒤적거리며 확인하더니, 슬쩍 이쪽을 쳐다보곤 말한다.


"당신은 이제 장학생이 아니에요"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 네?"


"당신은. 이제. 장학금. 못.받.는.다.고. 와카루?(알겠어?)"


늘 이런 식으로 귀먹은 노인에게 말하듯 일어가 아직 어눌한 외국인 유학생에게 큰 소리로 되묻는 게 이 사람 특징이다. 바쁘니까 빨리 가란 뜻도 포함되어 있다.


평소라면 돌아섰겠지만, 당연히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불안함이 엄습했다. 작정을 하고 물었다. 무슨 말이냐고. 불친절한 직원의 짜증 섞인 설명이 한 마디씩 귀를 찔렀다.


'서류 미비'로 인한 자격 상실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박사과정생이 되려면 먼저 1년에서 2년 정도  전공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공생의 소속은 아직 대학원이 아니라 대학 학부다. 박사과정에 입학하려면 이 전공생 기간에 대학원 입학시험을 봐서 합격해야 한다. 특히 석사가 아닌 박사 과정으로 가려면 학교에서 주관하는 석사 과정 인증 시험에 먼저 합격하고, 그 후 박사 과정 입학시험을 다시 통과해야 한다. 나는 1년 반의 전공생 기간 동안 필기, 실기, 면접과 연구 실적 평가로 이루어진 이 시험들을 모두 합격했었다.

합격자를 여전히 이렇게 게시판에만 공지한다. 박사 과정 최종 합격자 공지.

이렇게 입학 준비를 끝낸 상태였는데, 전공생에서 박사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장학금 신청 서류를 교수가 한번 더 제출하게 되어 있었다는 건 어디에도 쓰여있지 않았고 누구도 말해준 적이 없었다. 이 불친절한 직원을 통해 그날 처음 알게 된 건, 최근 서류를 여러 번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가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장학생이 아니라 일반 학생으로 박사과정에 입학이 된 것이고, 이에 장학금이 지급되지 않았던 거다. 문부성 장학금을 한번 받았던 사람은 어떠한 이유로든 다시 받을 수 없다는 조항이 있어서 내가 다시는 문부성 장학생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사무실을 나와서 발걸음을 더듬더듬 교수실로 향했다. 그동안 내가 먼저 교수실을 찾은 적은 거의 없었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 해서 들어갔더니 앉으란다. 그리고는 조교를 호출한다. 조교가 들어오는데 손에 녹음기를 들고 있다. 교수가 내게 왜 왔냐고 묻는다. 떨리는 목소리가 녹음기에 고스란히 담기는 걸 느끼며 물었다. 제 장학금이 끊어졌다고 하는데.. 교수님께서 서류를 제출하지 않으셨다고 하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무슨 서류?"


교수의 대답이다.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 했다. 대학원실에서 뭔가 착오가 생겼나 보니 거기 가서 얘기하라면서, 더 할 말 없으면 이제 나가란다.


내가 올 걸 예상하고 있었고, 뭐라 답할지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이미 벌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설마.. 하며 대학원 사무실에 다시 가보았다. 교수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전했다. 대학원 사무실 직원은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아까와 똑같은 대답을 한다. 우리는 서류 달라고 수차례 통보를 했고, 교수가 분명히 확인했지만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그 밖의 사항은 난 모른다고. 가서 교수랑 해결하라고.


그 후로 한동안은 이 상황을 해결해 보려는 나름의 노력이 이어졌다. 유학생 센터에도 가보고 문부성에 직접 문의도 해보는데 날이 갈수록 확실해 지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뿐이었다. 정황상 '역사 이야기는 듣기 싫고 공부만 하겠다'는 내 의사에 대하여, 그럼 '공부는 가르쳐 주겠지만 나라 돈은 줄 수 없다'라고 대응한 거지만, 교수가 끝까지 모른 채 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남은 선택은 더 이상 교수에게 밉보이지 않고 자세를 더 낮추어 박사 학위라도 받는 것뿐이었다. 책꽂이엔 '친일파를 위한 변명' 이란 책이 여전히 조롱하듯 꽂혀 있다.


일본에 온 지 1년 반쯤 되던 때다. 그 사이 아내는 육아 휴직 기간을 다 쓰고 아이와 함께 한국에 들어가 있었다. 장학금에서 얼마간을 한국에 보내고 나머지로 월세와 생활비를 해결하던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할 방안을 마련해 보려 했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월세를 내야 하는 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오늘 점심을 사 먹을 돈 조차 없다. 하루하루 조여 오는 상황은 연구와 공부에도 영향을 끼쳐, 아무것도 못하고 하루하루 폐인처럼 지내게 했다. 꽉 짜여 돌아가는 연구실 환경 상 내 쪽에서 시작된 삐그덕 거림이 실험실 전체에도 영향을 미치자 선배들이 나를 모든 일에서 하나둘 씩 제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여를 지내며 깨달은 것은, 이렇게 계속할 수는 없다는 것뿐이었다. 집에 유학 자금을 요청할 수도 없는 형편 상, 일단 다 멈추고 한국으로 돌아가 돈을 마련해서 다시 오는 것 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휴학계를 냈다. 그리하여, 일본으로 의기양양하게 떠났던 나는 모든 것을 놔둔 채 갑작스러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 것이다.

 





그 후 수개월 후, 어느 매섭게 추운 겨울밤,


서울의 어느 술집 후미진 주차장에,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된 내가 정신을 잃은 채 꽁꽁 얼어가고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온몸이 얼어붙은 내가

기적처럼 눈을 떴다. 


무슨 상황인지를 파악하려 애썼다. 숨이 가쁘고 머리가 멍하다. 잠결인지 꿈결인지 내 왼쪽 창문에서 바람이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지금 몇 시지? 움직이려 하지만 몸에 아무런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이대로 얼어버리는 건가? 싸늘한 느낌이 머리를 스쳤다. 저 창문을 닫아야겠다. 깜빡 깜빡 정신 잃기를 반복하며 손가락을 버튼에 올려 놓으려 애썼다.   


그러던 어느 순간,

지금도 기억하는,

아주 묘한 느낌이 찾아왔다.


그냥 있을까?
그냥 이대로..


세상을 얼어붙게 만든 그날의 강추위는

어쩌면 내게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적당한 변명거리를 던져주고 있었다.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어느 날 문득,

아주 쉽게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삶을 선택해야 하는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전 03화 전혀 다른 세상과의 만남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답이 있다면, 알 수 있는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