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마지막 주, 아이들 학교의 3번째 Term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무사히 2주의 학교생활을 보낸 지금, 멜버른이 주도인 빅토리아주의 하루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역대 최고 수치인 700명을 넘어서는 가운데 우리가 있는 NSW주 역시 매일 15명 정도의 지역감염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언제 확산될지 모르는 상황에 항상 조마조마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번 텀에 우리 큰아이는 우여곡절 끝에 학교 스포츠로 다소 생소한 Rowing을 선택하였다. Term 1에는 카누, 다이빙, 워터폴로, 테니스, 럭비 중 무난한 테니스를 선택하였고, Term 2에는 COVID-19으로 스포츠를 운영하지 않았으며, 이번 Term 3는 하키, 풋볼, 로잉, 배드민턴 중 선택이었다. 물론 스포츠가 꼭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호주인들의 유난스러운 운동사랑의 영향인지 이 곳 학생들 또한 아주 적극적으로 스포츠 활동을 하는 것 같다.
물론 우리 큰아이의 선택은 이번에도 무난한 배드민턴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배드민턴, 테니스는 한국에서도 배울 수 있는데 좀 더 색다른 걸 배워보자며 로잉을 하자고 권하면서 스포츠 신청 마감일까지 2주에 걸쳐 곁에서 지켜보는 나로서는 답답한 부녀간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보기엔 쪼끄마한 우리 아이가 로잉을 하기에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은데 나름 운동 좋아하는 아빠의 과한 욕심인 것 같아 강요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결과는 아빠의 승리였다. 우리 딸이 로잉 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을 것 같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아빠의 모습에 착한 딸이 양보한 것 같다.
Rowing은 일주일에 2번 학교 수업을 마친 뒤, 버스로 30~40분 거리에 있는 로잉클럽으로 이동하여 훈련을 받는다. 첫 훈련날은 시드니에 내린 폭우로 인하여 학교 체육관에서 체력훈련을 하였다. 팔 벌려 뛰기, 팔 굽혀 펴기 같은 운동을 하다가 2인 1조로 복싱을 하였다는데 아이가 꽤 재미있었나 보다. 비가 와서 추운 날이었음에도 덥다고 얼굴이 벌겋게 익어서 왔다. 호주에서는 운동으로 복싱을 하는 언니들을 공원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피트니스센터에도 복싱 강좌가 있다. 대개 이 언니들은 펀치 한방에 웬만한 남자도 날려버릴 듯한 멋진 팔근육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 딸 복싱을 하다 왔다고 하니 왠지 멋있는걸.
그리고 드디어 처음 로잉클럽에 가서 훈련하고 온날. 나는 어두워져서야 학교로 돌아오는 딸을 안타깝고 걱정스레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이는 새로운 경험에 꽤 흥분하고 들뜬 모습이었다. “엄마, 그 배가 말이지, 노를 저어야 해서 속도가 느릴 줄 알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얼마나 빠른지 몰라.”, “아니, 첫날부터 애들을 배를 태워 강에 내보냈다고?”, “응, 다른 배는 언니들만 타고 코치는 모터보트를 타고 따라가는데 우린 초보자만 있어서 코치가 같이 타서 지시했어. 근데 코치 선생님 덩치가 커서 우리 배가 느린 것 같아.” 한참 흥분해서 재잘재잘 얘기하다가 슬쩍 아빠 눈치를 보며 “근데 나 다음 텀에는 절대 안 한다.” 하고 못 박는다. 재밌긴 한데 아빠의 뜻대로 되는 것 같아 인정하기 싫은 반항심으로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다음 주, 큰아이가 로잉을 하러 갔을 때 우리는 살짝 로잉클럽 근처에 가 보았다. 작은 만처럼 들어간 지형에 위치하고 있어 물은 잔잔하고 옆에는 푸른 잔디가 쫙 깔린 공원이 넓게 있으며 물가로는 자전거길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 살짝 한강공원이 생각나는 분위기였다. COVID-19으로 인하여 모든 활동에서 부모는 접근 금지 이기에 우리는 산책하는 사람인양 지나가며 사진을 찍으며 감탄하다가 돌아왔다. 너무나 평화롭고 고요한 분위기에서 노를 젓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남편은 자기도 하고 싶다며 들떠있었다. 그래, 자기가 그렇게 하고 싶으니 아이를 등 떠밀어 보낸 거겠지. 원래는 학교에서 부모도 같이 등록을 받아서 다른 학교 부모들과 경기도 하는 것 같은데 올해는 모두 중단된 것 같다.
잔잔한 물 위에 노 젓는 아이들
나의 걱정과는 달리 새로운 활동에 적극적이고 금방 적응하는 아이가 참 대견스럽고 고맙다. 지금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손미나 아나운서가 파리 생활을 하며 쓴 책에서 본 내용이 생각난다. 파리에서는 자유롭게 구사하는 외국어 하나, 관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다룰 줄 아는 악기 한 가지, 남들과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 하나, 공분에 의연히 참여하는 자세 그리고 꾸준한 봉사활동, 이와 같은 조건을 갖춘 이들을 중산층이라고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중산층 하면 딱 생각했던 돈과 관련된 조건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조건들인데 사실 이런 것들이야말로 정말 인생을 풍족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고 체육시간을 줄이는 우리 학교와 달리, 호주의 학교는 스포츠, 미술, 음악, 드라마, 댄스 등 정말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게 지원을 많이 하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데 내가 즐길 수 있는 적성과 취미를 찾는 것 또한 공부만큼 중요한 것인데 우리는 공부를 위해 이런 것들은 나중에 해도 된다며 참으라고 대학만 가고 나면 마음껏 할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미뤄 왔던 일을 어른이 된 우리는 찾았을까. 선공부 후인생을 지금 우리는 즐기고 있는 것일까.
텀 3가 반쯤 지나간 지금, 학교 측에서 다음 텀의 로잉을 등록하라는 이메일이 왔다. 다음부터는 절대 안 한다고 하던 우리 딸. "등록 마감일까지 생각 좀 해보고요. 이게 꽤 재미는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