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을 중심으로 퍼지던 호주에서의 COVID-19 확산세는 이제 한풀 꺾여 안심하고 아이들이 등교하는 가운데, 학교에서는 여전히 교내에서의 학생과 일반인의 접촉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고 있다. Term3까지는 등교 후 학교 내에서만 생활하다가 Term4에는 서서히 현장학습활동(여기서는 excursion이라고 한다)도 다시 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박물관 같은 곳은 가지 않고 학교 근처 공원을 주로 가고 있지만 그 정도라도 아이들이 학교를 벗어나 콧바람을 쐴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작년 이맘때는 정말 행사가 많아서 학교를 찾아가는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 모든 활동을 부모 초대 없이 그리고 학년별로 학생이 섞이지 않도록 나누어서 조용히 치르고 있다. 심지어 올해의 초등학교 6학년 졸업파티 또한 부모는 참석할 수 없고 학생들끼리만 행사를 치르겠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우리 큰아이가 작년에 졸업파티를 하여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Public speaking speeches
초등학교에서는 매년 Speaking 대회가 열린다. 우리의 웅변대회 비슷한데 아이들은 이 발표를 위해 수업 시간에 스스로 주제를 정해 주장하는 글을 쓰고 선생님과의 피드백을 통해 점점 대본을 완성한다. 학년별로 자체 발표대회를 하고 거기서 우수한 학생을 뽑아 강당에 전교생이 모여 그리고 가족도 초청하여 최종 대회를 시행한다. 그러나 올해는 각 학년별로 조용히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학교에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의 평범하게 즐겨야 할 시간과 경험들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안쓰럽다.
작년에는 우리 작은아이는 특별히 스피치를 준비하지 않았었다. 아마도 호주에 온 지 며칠 안되어 영어도 안되고 하니 제외시켜준 듯한데 그래서 나는 이 스피치 대회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학년별 예선전을 하기 직전에 작은아이가 모든 학생이 의무적으로 발표를 해야 한다고 집에 와서 글을 쓰고 발표 연습을 할 때만 해도 알아서 어떻게 하겠지 하고 별생각이 없었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아이가 스스로 끄적끄적 문장을 적는 것을 보며 1년 동안 많이 발전했구나 대견스러워하고 그저 같이 스피치 시간을 재주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우리의 목표 또한 소박해서 원래는 2분 30초 발표를 해야 하지만 최소한 40초만 넘기면 패스라고 하여 우리의 목표는 40초 채우기였다.
드디어 발표날,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작은 아이의 표정은 침울하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친구들 앞에서 서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발표를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암기하여 발표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적어 둔 글을 보면서 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저녁 내내 대본을 보기 좋게 정리한다고 새로 작성하고 스피치 연습을 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아이는 발표 순서가 되었을 때 너무 당황하여 가방 속에 넣어둔 종이조차 찾지 못했고 무서워서 발표를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담임선생님의 메일이 왔다. 내일이 발표의 마지막 날인데 발표가 짧아도 괜찮고 적은 글을 보고 해도 좋으니 가정에서 격려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쯤 되니 아이가 너무나 안쓰럽고 불쌍하기까지 하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잘 놀고 학교도 재미있다고 해서 이제 한시름 놨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난관이 닥칠 줄이야.
발표의 마지막 날 아이는 어찌어찌 완벽하진 않아도 장애물 하나를 뛰어넘는 데 성공한 것 같고 다시 밝은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은 너무 재미없는 주제를 고른 것 같다며 1등 한 아이의 주제는 참 재미있었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어린이는 왜 학교를 다녀야 하는가로 작성했다가 마음이 바뀌어 어린이들에게 놀이가 왜 중요한가에 대해 발표했는데 우승한 아이는 슈퍼히어로에 대한 발표를 했다고 한다.
어쨌든 나름의 산을 하나 넘었고 요 며칠 맘고생 많이 한 아이가 한층 더 성장했을 것이라 믿는다. 내년에는 조금 더 수월해지겠지라고 바라면서 말이다.
Book Week
작년 이맘때 처음 학교의 북위크 행사를 참석하며 우리는 호주 학교생활의 문화적 충격으로 얼떨떨한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선생님들과 스텝, 학생들 모두 어찌나 흥이 넘치고 즐겁게 노는지, 이렇게 코스튬 차려입고 노는데 무척 익숙한 모습이고 우리만 물에 뜬 기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물론 올해의 행사는 부모는 초청되지 않았고 아이들 역시 작년과 같은 퍼레이드는 하지 않고 각 학년 교실에서 조용히 행사를 치렀다. 각자 좋아하는 책의 캐릭터를 골라 코스튬을 차려입고 좋아하는 책의 한 부분을 읽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우리 작은아이는 책을 고르는 순간부터 제발 북데이에 아파서 학교를 못 갔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다. 코스튬을 입고 가는 것도 책을 친구들 앞에서 읽는 것도 부끄럽다는 이유였다. 지금은 감기와 같은 증상으로 학교를 결석할 경우 코로나 검사 음성 확인서를 지참해야 다시 등교를 할 수 있기에 절대로 아프다는 핑계로 결석하면 안 된다고 아이를 설득하고 책을 고르기 위해 서점을 엄청 돌아다녔다.
아이는 동물이 나오는 책만 열심히 보다가 결국 곰돌이 푸로 결정하였다. 코스튬을 갖춰 입는 것을 부끄러워하니 우린 그냥 노란색 티셔츠에 빨간 스카프를 매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북데이 아침까지도 몸을 배배 꼬며 등교한 아이는 학교에서 너무 즐거웠다며 신이 나서 왔다. 일단 참석하면 항상 이렇게 즐겁다고 하면서 왜 아직도 이렇게 과정이 힘겨운 것인지, 아직도 아이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Virtual Art Exhibition
올해 초등학교의 가장 큰 행사는 Virtual Art Exhibition라고 한다. 아이들이 이번 텀 동안 열심히 만든 미술작품들을 전시하는 것이다. 물론 예전에는 학생 가족들을 모두 초청하는 큰 행사였겠지만 올해는 학교에서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아이들 각자의 작품과 단체작품, 그리고 아이들이 즐겁게 작품을 만드는 사진들을 올려주었다. 그리고 웹사이트의 배경은 아이들의 단체사진이나 학교 바로 옆의 공원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사진들로 꾸며졌는데, 사실 호주는 햇볕이 쨍쨍한 날의 사진은 무조건 예쁘게 나오기에 배경 사진들이 모두 너무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여서 좋았다.
올해의 Virtual Art Exhibition의 주제는 Nature이다. 학년별 반별로 주제가 더 세분화되어 어느 반은 바다를 주제로, 어느 반은 숲을 주제로 작품을 준비한 것 같다. 우리 작은 아이반은 동물을 주제로 했는데 그중에서 우리 아이는 개구리를 표현하였다. 아이의 설명을 들으니 뭔가 판화처럼 작품을 찍어낸 것 같은데 아트 시간마다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서 시간이 아주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들인 정성에 비해 자기 작품이 그렇게 훌륭하지 못한 것 같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엄마인 나는, 전시회를 직접 가서 아이들과 작품 앞에서 사진 찍고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하는 현실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