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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Nov 19. 2024

병들지 않는 병

프리츠 펄스의 게슈탈트 기도문을 읽으며 자신의 삶 지켜내기


병들지 않는 병



또 누군가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맘쓰지 말아요

그사람들이랑 당신, 남이잖아요

당신 문제 아니잖아요

그거, 오만한 겁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근데

맘쓰지 말라는 말은

사랑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리고

그건 내게 인간은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맘쓰지 않고 살아도

사랑하지 않고 살아도

당신은 행복할 수 있던가


병들지 않는 병이 든 당신들이

나는 애닯고 슬프다











  11월 초, 인천의 초등특수교사 한 분이 또 스스로 생을 등지셨다. 작년과는 달리 세상이 너무 잠잠하다. 선생님께서는 얼마 뒤 결혼식을 앞두고 계셨던 분이시라고 한다. 학년 초에 잠시 학생 수가 줄어서 특수학급이 1개가 줄었고, 그로 인해 원래 평소에는 2개 학급으로 운영해오던 특수학급을 교육청에서는 1개 학급으로 로줄였고, 교사도 1명만 배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전학을 왔고, 학급과 교사는 1개 학급 규모인데 실제 학생 수는 2개 학급으로 운영해도 힘든 수준이 되었으며, 학생지도에 대한 학부모들의 요구도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교육청에 "저, 이러다가 죽을 거 같아요. 뭐든 좋으니 도와주세요."라는 메시지까지 남겼건만, 학급 수 증설도, 교사 추가 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선생님은 끝내 버티지 못하셨다.


  그 누구였더라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부처님, 예수님이 오셔도 그 일은 못할 일이었을 것임을 우리는 안다.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는 교사들. 그 속을 누가 알까. 그래서일까. 성인이라 불리우는 분들의 과업 대부분은 사람들을 돌보거나 가르치는 일들이시다. 도인 정도는 되어야 견디고 지속할 수 있는 일이 돌봄과 가르침의 일인가 보다 싶은 생각이 든다. 세상은 이 고귀한 일을  허드렛일, 값싼 노동비로 매꾸고 있다.


  그 와중에 학교에 학폭이 또 터졌다. 아침에 학교에 왔는데 남자아이 둘이 몸통 박치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여자아이에게 남자아이 하나가 여자아이의 등을 손바닥으로 밀며 몸통박치기를 했다. 아이는 집에 가서 학부모에게 말했고, 남자아이 둘과 담임교사는 기분상해죄를 선고받았다. 학부모는 남자아이 두 명에 대한 즉시분리조치 실시를 요구했고, 담임교사에게는 도대체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하고 계시냐는 질타를 쏟아부었다. 나는 즉시 분리조치 실시를 처리하느라 그날 하루종일 수업에 들어가지 못했다.


  우리는 학폭사안 처리에, 학부모의 민원 전화 대응에, 분리조치된 아이들 관리에,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 관련 아이와 학부모를 위한 상담 서비스 제공까지 하느라 세상을 떠나신 동료 선생님에 대한 애도와 추모는 퇴근 후 조용히 각자 할 뿐, 이 사태를 변화시킬 힘을 끌어올릴 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퇴근 후, 흰 종이로 연꽃을 접어 만들어 선생님 추모에 다녀오곤 했다. 추모장소는 교육청 앞. 직장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었다.


  마음공부를 같이 하고 있는 모임에서 어떤 분께서 내게 이 사안에 대한 이야기 공유를 요구하셨고, 나는 기꺼이 열어 보였다. 그리고 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아무 관심이 없다는 사실과 교사들이 남의 일에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며 열을 내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들. 나는 씁쓸히 웃으며 답했다. "좋은 말씀들, 다른 관점으로 사안을 바라볼 수 있도록 솔직히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임이 끝나고... .

  위의 시를 적었다.


  무슨 뜻인지 안다.

  나는 오만하고 어리석어서..

  내 문제도 아닌 것을 붙잡고 집착하고 있느라..

  아프고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안다. 잘 안다. 그런 말들.

  신물나고 염증나도록 들어왔다.


  나는 모르겠다.

  위의 말이 맞고 틀린지, 옳고 그른지.

  그런건 난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안다.

  '이건 아닌 것 같아'라는 느낌...

  나는 그 느낌을 따를 뿐.

  내 길을 갈 뿐.


 잠시 멈춰서 시치료에서 배웠던 프리츠 펄스의  게슈탈트 기도문을 읊어 본다.


  내가 나에게 말해준다.

  '나는 나의 길을 갈 뿐. 내 내면의 소리에 정직하게 대응할 뿐. 남들이 나를, 우리를 오만하다고 말하든, 남 일에 오바하고 주책맞게 끼어드는 거라고 말하든 상관치 않겠다. 난 나에게 정직할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다.'


  영화 스파이더맨이 떠오른다. 스파이더맨은 자신이 엄청난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는데 자기 앞에서 벌어진 어떤 부도덕한 일에 눈을 감았던 적이 있었다. '내 일 아냐. 나랑 상관없어'라는 마음. 그리고 그는 자신을 따뜻이 키워준 삼촌을 잃는다. 자신이 눈감았던 그 일로 인해.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두었던 그 일은 그에게 그렇게 되돌아왔었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사랑하는 아이와 제자들이 좀 더 안전하고 평화로우며 자유롭고 멋지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 위해 외면하지 않을거다. 눈 감지 않을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노력할 것이고, 알릴 것이며, 연대할 것이다. 나는 그래서 오늘 이렇게, 누구라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기록을 남겨본다. 부디 누군가에게는 닿기를... .



게슈탈트 기도문

-프리츠 펄스


I do my thing and you do your thing.
I am not in this world to live up to your expectations,
and you are not in this world to live up to mine.
You are you, and I am I,
and if by chance we find each other, it's beautiful.
If not, it can't be helped.
— Fritz Perls, Gestalt Therapy Verbatim 1969


나는 내 일을 하고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합니다.
나는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내 삶을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입니다.
이렇게 우연히 만난다는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또한 어쩔 수 없습니다.
— 프리츠 펄스, 게슈탈트 요법의 기록(Gestalt Therapy Verbatim) 1969


자료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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