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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챙기며 살기

-시를 쓰며 아득해진 마음 되찾아오기

by 서로


속 챙기며 살기

-서로


아침에 눈 떠 창문을 여는데

날카롭고 새된 소리가 들려왔다

창밖으로 가만히 귀를 세워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따라가 보니

조그만 봉고차 뒤편에서

동네 아주머님들이

그날의 부업거리를 나눠 받으며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편한 일거리로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지려고

그렇게도 뾰족하고 날선 소리를

서로에게 쏘아대고 있었다


마음이 아득해져서였을까

그 풍경 너머로 문득

저 먼 우주 어딘가에 있다는

어떤 로봇 이야기가 떠올랐다


행성 탐사를 위해 우주로 날아간 로봇은

하루 임무를 시작하고 끝낼 때

그 별의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고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한다

그게 우주로봇이 하는 일이라고 한다


마음 없는 우주탐사로봇은

별이 뜨고 지는 걸 바라보고

매일 제 안에 그것을 담으며

무심히 고요히 살아가는데

마음 있는 우리네는 무엇을 바라보고

매일 우리 안에 무엇을 담으며

아득바득 요란하게 살아가는 걸까


오늘은 열었던 창 굳게 닫고

내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겠다

그리고는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나

헤아려봐야겠다

어쩌면 우주탐사로봇이

저 먼 별의 일몰과 일출을 내 안에

전송해 놓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눈을 뜨고 창문을 여는데 뾰족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아침마다 봉고차 한 대가 자잘자잘한 부업거리들을 큰 봉지에 담아 가져오면 동네 아주머님들과 할머님들이 모여 나눠가져가고는 하는데 일거리를 배분하던 중에 소란이 생겨난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아침 일찍 출근하느라 몰랐던, 방학해서 오전에 집에 있는 날이면 가끔 보는 장면이다. 요즘 바깥 세상이 소란스러워서 그랬을까. 오늘은 그 장면과 소리 앞에서 평소보다 더 마음이 아득해져갔다. 아득해진 마음은 저 먼 우주 어딘가에 있다는 우주별탐사로봇을 떠올리게 했다. 언제였더라. 뉴스였을까, 티비였을까, 소설이었을까, 시였을까. 모르겠다. 우주별탐사로봇은 매일 우주에서 우주별들의 일출과 일몰, 하루 변화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에 푹 빠져 나도 차라리 인간 말고 우주탐사로봇이 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그 마음이 오늘 아침에 다시 떠올라 왔던 것 같다. 자꾸만 아득하게 흐릿해져가는 정신을 다잡아야 했고, 그래서 시를 썼다. 그리고 깨달았다. 남 말고 나부터, 내 속부터 챙겨야 한다는 것을.


정말 푼돈일텐데. 그게 뭐라고. 그깟 게 다 뭐라고 악다구니를 쏟아가며 아침의 평화를 깨트리던 아주머님들. 흔들렸다. 그분들의 존엄은? 인간의 존엄은? 슬펐고, 화가 났던 나. 나 정말 여전히 오만하구나. 내가 뭐라고. 그녀들의 삶을 존엄치 않다고 재단한단 말인가. 내가 그깟 거라고 여긴 것들이 그녀들에겐 오늘 저녁 찬 거리를 살 수 있게 해줄지도 모르고, 사랑하는 자녀들의 목도리나 장갑, 양말이 되어줄 지도 모르는데. 나는 과연 그렇게 절절하고도 열심히 살아본 적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내깟 게 뭐라고. 한참 못났다. 아직 멀었다.


걸출한 말솜씨 장착하고 계신 우리 동네 아주머님들, 오늘 하루도, 내일 하루도, 그 다음날도 매일매일 지금처럼 부디 굳세고 건강하시기를. 그래서 내일도, 내일 모래도, 그 다음날도 오늘처럼 내게 장터국밥같은 세상살이 쏟아내 주시기를. 거칠고 퍽퍽하고 힘든 우리네 삶, 그렇게라도 질기고 질게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우리네도 분명 언젠가 저 먼 우주탐사로봇이 보내온 장엄하고 경이로운 일출과 일몰 사진을 열어볼 날도 올테니. 일단 살자. 살아가자! 그게 먼저다. 버티고 살아내야 그런 날도 오는 거다.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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