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를 쓰며 분노 가라앉히기
뱀
-서로
어쩌다가 뱀과 엮였다 뱀아 물어라 물어라 나를 물어 뜯어라 나는 지금 불이다 나를 물게 해 너를 태워 버릴 테다 그런데 뱀은 뱀이었다 나를 물지 않았다 지독하면서도 현란한 처세술로 조용히 꼬리를 내리고 불을 피했다 불은 엉뚱한 곳으로 튀어 다른 이들을 태운 것 같다 내 잘못이다 뱀을 얕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불이 되지 말걸 그래도 하나는 얻었다 나도 불 될 줄 아는 줄 깨쳤으니 더이상 내게 다가오지 않을 거다 불 끄러 가야겠다
뜨겁게,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데이지는 않기를 바라며 나름 최대한 조심스럽게 정직한 소리를 내었던 순간이 있었다. 아연실색하는 표정들. 나는 최선을 다했고, 내 할 일은 다 한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인욕의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던 어떤 이, 내게 어떻게 불을 껐는지 물어오신다면 그 불을 다른 곳에 쏟아 태워내 꺼트렸다고 답하고 싶다. 내 안의 뜨거운 불을 쏟을 곳을 어떤 선한 분께서 마련해 주셔서 거기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너무 시기 적절하면서도 탁월하게 일이 주어져서 기분이 좀 이상하다. 요즘은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혹시, 설마, 진짜! 속된 말로 우주가 내 삶에 관심이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