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추천받았을 때
'고요서사'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문학을 주로 채워둔 이 곳에서 책을 사게 될 줄은 몰랐다.
책장 속 가득한 책들 사이 너무 오랜만에 서점에 온 탓에 나는 무슨 책을 읽어야 할 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예쁜 표지의 책부터 아무거나 집어 읽어봤지만,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했고
나보다 먼저 오신 다른 분들이 다 나가기만을 기다려 결국 직원분께 추천을 받았다.
조남주 작가와 장강명 작가의 책을 좋아하고, 별 생각없이 후루룩 읽어 넘길 수 있을 만한 책을 추천해달라는 나의 말에 직원분은 네 권 정도의 소설을 추천해 주셨는데 그 중 한 권은 토익을 공부할 때 토익이 끝나면 읽어야지 하고 다짐했던 조남주 작가의 신간 소설 '사하맨션'이었다.
'사하맨션'과 '빛의 과거'를 번갈아 읽으며 고민하였다. '빛의 과거'는 70년대 후반을 그린 과거 이야기이고, '사하맨션'이 미래를 그린 소설이기 때문에 나는 '빛의 과거'를 읽고 '사하맨션'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책을 읽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가 산 책은 은희경 작가의 '빛의 과거'이다.
어쩐 일인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기분이 묘했다.
70년대 후반의 여자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라는 간략한 설명을 들었을 때부터 나와 같은 주인공들이 등장하니 공감하기 쉽고 상상하기도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그 이상이었다.
그 여학교가 어디인지 궁금해 하는 나를 엿보기라도 한 듯, 소설 대목에는 꽤 자주 그 여학교가 어디인지 말해주었다.
이대의 평가방식이 바뀌어 이대는 가지 못해 이 학교에 왔다고 말하는 등장인물도 있었고, 청파동 거리를 취재하는 학보사 기자인 주인공, 후문의 공원.
이 표현 중 하나만 읽더라도 적어도 우리학교 학생은 이 곳의 배경이 우리학교 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 틀림 없었고, 나 역시 틀림없는 우리학교 학생이었다.
허구의 소설이 현실을 담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이후로 그 소설을 어떻게 읽게 될까
내가 그 소설의 주인공인 마냥 내 머릿속에서는 한 편의 극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우연히 추천받은 책이 '운명'('빛의 과거'에서는 논리적으로 설명은 불가하지만 필연적이라고 생각할 때를 '운명'이라고 말한다.)임을 알게 되었을 때,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이것이 독립서점의 매력인가하며 긍정적으로 지나친 일반화도 했다.
은희경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우리학교 선배님이셨고,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국어국문학과를 다니셨다.
'운명'을 추천받은 '고요서사'에 나는 아마 또다른 운명을 찾으러, 아니면 추천받으러 떠날지도 모른다.
나는 운명론자가 아님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