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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적인 하루 Mar 25. 2020

006.다양한 말을 구사하는 사람

그곳에 두고 온 것들_말





“구리무 있어?’”

자취집에 놀러 온 엄마가 구리무를 찾았다. 구리무가 뭐더라, 하고 속으로 한번 되뇌어 보다,

“뭐 찍어 바를 거 있냐고 쩡(작가의 애칭이다)” 다시 한번 되묻는 엄마에 화장실 선반에서 수분크림을 건네주었다.

“엄마 구리무가 뭐고 구리무 ! 엄마 어디 가서도 그렇게 말하나?”

“아니 그냥 니 웃길라고 카지” 엄마가 개구지게 웃으며 얼굴을 두드렸다.

아니, 엄마 웃기려는 의도 치고 엄마는 ‘구리무’를 너무 정색하고 찾았어. 그리고 내가 ‘구리무’를 한두 번 들은것이 아닌걸?


아마 이 글을 읽는 몇몇 사람들은 알거나 혹은 짐작했겠지만 구리무는 ‘크림’의 일본어 발음이다. “야 동동구리무라고 회사도 있었어”라는 엄마의 말에 네이버에 급히 찾아보았더니 무려 1947년부터 쓰인 말이며 중일전쟁 이후 러시아 행상들이 북을 ‘동동’ 울리고 크림을 팔아서 ‘동동구리무’라는 말이 나왔고, lg화학에서 실제로 상표명으로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입을 동그랗게 하고 작은북을 울리는 상상을 하며 ‘동동 구리무’ 한번 더 발음해 봤다. 다시 한번 읽어 봐도 귀여운 발음이다. ‘수. 분. 크. 림’ 특히 ‘크림’의 ㅋ발음이 조금 차갑게 느껴지는 반면 ‘구리무’는 더 포근하고 귀여운 느낌이지 않나.(어디 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애칭처럼 한번 써봐? 생각했다가 일본어란 생각에 다시 접어둔다. 엄마는 종종 엄마만의 단어를 쓴다. 구리무도 엄마의 무궁무진한 말중 하나일 뿐이다. 엄마가 일본어를 종종 쓰는 것은 아마 일본과 가까워 영향을 많이 받은 도시 ‘부산’에서 자란 이유도 있을 것 같고, 일본에서 태어나신 외할머니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내가 엄마의‘말’을 물려 받았듯 엄마도 그랬겠지.  


엄마가 구사하는 ‘말’은 일어 말고도, 내륙 사람인 할아버지와, 해안지방의 할머니 아래에서 익혀진 오래된 방언들 부터, 엄마의 반복되는 단어 실수로 만들어진 미미 스커트(미니스커트), 아트리움(아리따움) 같은 것들까지 다양했다. 이러한 엄마의 다채로운 말의 세계 속에서 자라온 나는 자연스레 나이 지긋한 분들의 암호 같은 단어를 빨리 터득했다. ‘오봉 좀 가지고 와라’라고 하면 재빨리 일어나 쟁반을 들었고. ‘티브이 다이에 저 뭐

고?’ 하면 티브이 장에 뭔가 긁힌 자국이 있는가 확인했다.


‘가세이’는 비교적 최근 알게 된 말인데, 언젠가 할머니가 ‘가세이 어딨노’하고 찾기에 알게 된 사투리다. 맹한 얼굴로 엄마를 바라보니 엄마가 웃으며 가위를 건네주었다. “가세이, 가시개, 가위 다 같은 말이야 “ 가위를 가세이라고 말할 때면 매끄러운 언덕을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넘는 기분이었다. 가~세이~ . 가세이처럼 어르신들은 찾고 요즘사람들은 잘 찾지 않는 그런 말들이 나는 좋았다. 맛집 비밀소스를 아는 느낌이랄까. 그런 말들을 잘 아는것이 뿌듯했다. 이 작은 자부심 뒤에 사람들이자주 써주지 않으니 내가 앞장서 자주 써줘야 할 것 같은, 작은 의무감이라도 생긴 걸까.나는 그 말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종종 내 혀위에 올렸다. 그러면 최소한 나는 그들을 기억 할테니까. 이런 나의 방언 지킴이 정신은 친구들의 핀잔이나 놀림으로 돌아왔는데 예를들어,

“뭐 먹고 싶은데?”

“마! 짜장”

“뭔 짜장?”

“마! 짜장”

여기서 말하는 마! 짜장은 일반적인 그냥 짜장면을 말하는 것이다. “마!”를 ‘그냥, 일반적인’이란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끝을 살짝 올리되, 담백하게 ‘야, 임마!’에서 ‘야! 임’까지만 떼고 말하면 완벽한 발음과, 리듬이 만들어진다. ‘마’를 못 알아듣다니. 시비 거는 그‘마’가 아닌데 말이야. 친구들이 몰라서 가장 충격받았던 단어는 ‘꼬내꼬내’였다. 네이버에 찾아보니  ‘섬마섬마’의 방언 (경남, 전북) 라 나오는데( 이 말은 나도 처음듣는다.), 섬마섬마란 어린아이가 따로 서는 법을 익힐 때, 어른이 붙들었던 손을 떼면서 내는 소리, 감탄사라 설명되어있다.우리 집에선 ‘꼬내꼬내’는 아빠가 태워주던 하늘 자전거를 통칭하는 말이었다. 아빠가 누워서 내 두 손을 잡고, 다리 위에 내 배를 얹어 ‘꼬↘내 꼬↘내!’ 하고 태워줬던, 소위 하늘자전거 같은 것을 말한 것이었다. 친구들에게 ‘너희 아기 때 왜 아빠가 꼬내꼬내 태워줬잖아’라 말하면 친구들은, “얘 또 이상한 말 쓴다”라 핀잔을 줬다. 


‘지주막큼’. 이건 외할머니부터 엄마까지 자주쓰는 말인데 ‘본인이가져갈 만큼’을 뜻하나 네이버에 검색해봐도 나오지 않는다. 당사자인 엄마도 그 말의 근원이 어디인지 모르겠다고 하니 표기도 불확실하다. 그저 엄마가 빨래를 개곤, “지주막큼알아서 가져가라” 하면 알아서 챙겨갔던 기억이난다. ‘내나 똑같다’라는 말도 구전된 말인데, 사실 나는 여태껏 ‘매나 똑같다’인 줄 알고 그렇게 써왔다. 그놈이 그놈이다, 매한가지다.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게 무슨 말이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던 친구들도 낄낄 거리며 ‘내나 다 똑같다니까!’ 하곤 했다.


하루 중 서울말을 흉내내는 시간이 가장 긴 요즘, 아무래도 서울말은 조금 삼삼하다. 간이 덜 된 말을 씹으며 굴곡 없는 평평한 기분으로 하루를 난다. 심심한 마음으로 엄마의 요상한 방언들을 다시 되뇌어본다.오늘 엄마는 구리무를 잘 발랐으려나?

 

 

 

 

* 혹시나 누군가 곡해할까 말하지만, 사라다는 샐러드, 구리무는 크림, 다이는 받침대다.

쓸데없는 일본어 사용은 지양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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