긋는다고 남는게
언제부터인가 책에 밑줄을 긋지 않는다. 확실한 건 그 언제부터 전에는 책에 밑줄을 긋곤 했었다는 것이다. 그 옛날 교과서에도, 소설책에도 그랬다. 언제부터, 왜 밑줄을 긋지 않는지 생각해보니 책을 중고로 팔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책을 사는 주체가 부모님이 아니라, 내가 되었을 때. 알라딘 인터넷 서점을 알게 되고, 알라딘 중고 서점을 알게 되었을 때. 그쯤부터 나는 책에 밑줄을 긋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밑줄이 그어지지 않은 중고 책은 그런 책보다 훨씬 비싸게 팔 수 있다. 유행에 휩쓸려 산 자기계발 책이나 한때 감성에 산 말장난 책, 작가가 이제 내가 더는 소비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책 등등. 더 펼쳐보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는, 먼지덩어리의 책들은 중고서점으로 향했고, 그렇게 판 돈으로 새로운 책을 샀다. 자취를 시작하면서 책 깨끗이 보기 운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됐다. 책이 이사 때 얼마나 큰 짐이 되는지,( 책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 좁은 원룸에 책을 쌓아두다 보면 홈트 (홈트레이닝)하기도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책을 그저 떠나보내는것은 아니다. 밑줄 말고도 책을 남기는 방법을 찾았는데, 바로 얇은 투명 포스트잇이다. 마음에 드는 구절에 포스트잇을 붙여두고 다 읽은 후에는 붙여진 포스트잇을 찾아 노트에 옮겨 적는다. 한 번 더 읽을 땐 좋아하는 구절이 바뀌어서 포스트잇이 옮겨지기도 하고 좋아하는 구절만 읽기 위해 포스트잇을 찾아가기도 한다. 바로바로 좋았던 구절을 찾을 수있어 편리하다.
깨끗한 책읽기를 위해 하나더 애용하는것은 책갈피다. 사실 나는 중고 책 판매 때문이 아니더라도 책이 너덜너덜해지는 걸 싫어해서 책갈피를 애용했는데, 책갈피라고 특별할 것은 없고 납작하고 얇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냅킨이 될수도 있고, 가방에 들어있던 출처 불명의 시향지가 될수도 있다. 급할땐 영수증이 되기도한다.
이상. 밑줄을 긋지 않는 사람이 책을 남기는 법이었다.
밑줄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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