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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적인 하루 Sep 30. 2022

아무거나의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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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드실래요? 라 물으면 ‘아무거나 다 좋아요’ 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별 망설임 없이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아무거나요~’ 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럼 나는 성미가 급한 사람답게 ‘아무거나’라 답하는 그들을 다그치곤 했다. ‘아무거나 금지야, 아무거 나라 말하는 거 나 진짜 싫어!’


내 주변에도 당신 주변에도 ‘아무거나 족’ 들은 서식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거 나라 답하더니 ‘사실 난 별로였어’라고 뒤통수를 치는 이들은 잠시 제쳐두자. 그들은 논외 대상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내 주변의 아무거나 족들을 한번 읊어보겠다. 아무거나 족들은 일상적이면서도 중대한 결정인 식사 문제를 결정할 때도 나는 아무렴 다 좋다는 것으로 일관한다. 때때로 어제 먹었던 음식일지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여행지를 고를 때도 여행계획을 짤 때도 나는 어디든 상관없다며 군말 없이 따른다. 너랑 함께라면 어디든~ 이라는 닭살 돋는 말을 더하여 반박할 말이 없게 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보통 무던하고 불평불만이 없다. 그들을 상대하는 나는 때때로 답답함을 느껴 욱하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다. 또 가끔은 너무 많은 선택권을 나 혼자 짊어진 것 같아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답답하다 느꼈던 그 대답에 담긴 선의를 안다. 지난여름 함께 제주도를 여행했던 친구가 멀미가 심한 나를 위해 조수석 자리를 내준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나는 아무렴~ 상관없어”라며 뒷자리에 먼저 착석하더니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러 이동시간에 흥을 더해줬다. 그런 그녀가 이석증을 앓은 적이 있어 멀미에 약한다는 것은 여행이 끝날 무렵 알게 된 것이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무 피자나 다 좋다고 메뉴 선택지를 내게 주었던 친구가 있었다. 딱히 반문하지 않고 나는 하와이안 피자를 시켰다. 사실 하와이안 피자를 시켜본 적 없단 것은 자리를 파할 때 알게 된 것이었다. “그걸 왜 지금 말하는 거야?” 당황스러움과 미안함에 물어보았더니 그는 “못 먹는 게 아니니까. 맛있었어” 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물론 그들은 대부분 정말 다 괜찮다고 말한다. 실제로 괜찮을 수도 있다. 일상의 사사로운 선택지를 타인에게 준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뒤흔들리는 것은 아니니. 베푸는 이들은 어쩌면 별생각이 없었을 이 은근한 배려는 대수롭지 않게 다뤄져 받는 이들은 알아채기 힘들다. 그러니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건 일종의 배려라는 것을. 나의 선택권보다 당신의 선택을 더 존중해주겠다는 마음. 내가 조금 더 선호하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내 선택보다 당신을 더 먼저 생각해주겠다는 그런 다정이다. 주도권의 마이크를 타인에게 선뜻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쉬운 일이 아니니 쉽게 받은 친절이라 해서 쉽게 여기면 안 된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작은 배려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받겠지. 이런 작은 배려를 잊지 않길, 잊지 말고 내가 마이크를 잡기 전 나의 옆의, 앞의 누군가에게 먼저 건네 봐야겠다. 그리고 아무거나라 말하며 배려하는 이들에게 한국인답게 세 번 정도는 더 물어봐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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