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계획의 일부로서 살아가야 한다.
계획의 일부 앞선 에피소드에서도 말했지만, 인생은 희비극이 있는 한방이 아니다. 오래전과 같이 먹고사는 삶이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야 기대 수명 또한 짧으니 그때야 인생한방이 필요했을 수 있겠다만, 지금의 계획의 일부들이 지내는 세상은 결코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시기에서 인생의 희비극이 길고도 깊이 있게 형성돼야 되는 게 맞는 것 아닐까?
특색 없고 중복되고 모방된 인생한방이 강요되는 사회에서 그다지 행복함을 느끼지 못할수록 인간은 오히려 더 작은 사회로 기어들어간다. 밖에서 커피를 마시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웃으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실제의 시뮬레이션 세계가 아니라, 자기가 또다시 만들어낸 또 다른 시뮬레이션인 sns 속에 자꾸 기어들어가서 거기서라도 행복하고 싶어 한다. 거기서는 "like"라던지 댓글을 통해 비교적 쉽게 행복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삶이 팍팍하고 어렵다고 느낄수록 개인은 더 작은 사회에서부터 행복을 느끼고 싶어 한다. 개인이 소중하지 않으면 그 다음스텝의 행복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탄생된 우리는 어찌 됐건 자의나 타의에 의해 목표와 꿈을 꾸기 마련이다. 그나마도 자의면 다행이지만 타의면 그것은 불행에 가깝다. 특히나 다수의 아시아계와 일부 유럽 등에서 공동체를 목표로 한 인간구성 계획은 행복도 평가로 볼 때, 실패한 목표로 자리 잡은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우리와 반대로 북유럽 국가등이 늘 행복도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는 것을 보고 알 수 있다. 그들은 개인주의적 철학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다수의 아시아계나 사회주의, 공산주의등에서 말하는 공동체를 먼저 존중하는 것이 아닌, 사람의 각각의 생각을 존중하고 포용하여 하는것이다. 근본적으로 다채롭게 지내도록 만들어진 인간이란 생물을 누군가가 내세우는 어느 틀에 가둔 채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닌, 내 생각과 다른 이의 생각을 존중하고 들어보는 것이 선제되어 사회 문화적으로 만연해야 한다. 이게 근본으로 만들어질 때, 행복도가 높게 쌓인 개개인이 모여 타인과 공동체가 더욱 행복해질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고, 사람뿐 아니라 자연, 동식물, 나아가 지구까지도 같이 살 수 있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태양도 별이지만 반짝반짝 작은 별도 별이다. 태양의 노래는 없지만(지금 시점에서는) 반짝반짝 작은 별은 노래도 있다. 심지어 그 유명하신 모차르트가 작곡했다. 크게 빛나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를 멋지게 보이기 위해 내부충돌도 일으키고, 쉼 없이 자기를 불태워 점점 더 거대해지고 다수에게 서비스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 주위에는 작은 별이 많다. 작은 별도 태양처럼 밤하늘을 예쁘게 구성하기 위해서 빛난다. 또는 그 이상의 어떤 목적에 의해 탄생되어 미약하지만 자기를 서서히 빛내며 살아간다. 태양이 진 시간에선 그들이 최고다. 오히려 어두워질수록 더욱 아름답고 감탄을 자아낸다. 작게 태어나서 오래오래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태양보다 오래오래 살아갈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빛나는 존재이고, 모두가 빛나는 때가 있다. 모두가 태양이 될 필요가 없고, 태양도 하나고 작은 별도 각각 하나씩만 존재하면 된다.
우리 사회에선 이따금 "넌 특별한 존재야"라고 사람에게 말하기도 하고, "난 특별한 존재야"라고 스스로 주문하기도 한다. 개인의 다채로움이 존중받기 어려운 세상이라 그런지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책도 이런 식으로 제목을 달아놓으면 잘 팔린다. 그렇게 강요되는 세상 속에 모두가 특별한 태양이 되고 싶어 하니, 특색이 없다. sns를 보면 다 똑같은 외모에 다 똑같은 행동패턴을 갖는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는 이미 모두가 특별한 존재이자 작은 별이니, 그런 강요가 강요되지 않아야 한다. 아래를 한번 보자.
뭔가 하지 말라는 게 많아서 북유럽 맞아?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10가지 읽어보니 다 맞는 말이다. 최소한 이 10가지라도 지키면 신이 만들어준 계획의 일부에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저렇게 오래도록 지내온 사람들이니 행복한 게 당연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작은 별들이 다양한 아름다운 우주를 바라보듯 세상을 살자. 그런 세상 속에서 다양하고 다채로운 작은 별들을 바라보고 신비로워하며 즐겁게 살아가자. 위에 10개의 얀테의 법칙이 바로는 인지되지 않는다면, 양희은 선생의 "그럴 수 있어"라도 되뇌면서 살아가자. 틀에 처박힌 공동체적이자 전체적인 사회 속에 이기심을 말하는 잘못된 개인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개인주의를 서로 나타내어 다시금 계획의 일부로 돌아가자.
모두가 진정한 행복을 누리길 바란다.
(처음 연재해 보는 브런치 "계획의 일부"는 여기까지를 마지막으로 합니다.
그간 부족한 글을 읽고 공감을 눌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모두가 사랑받고 사랑 주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길 바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