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not do our best for the last
탄생이후의 획일화된 희-비극스러운 계획을 강요받는, 일종의 미시적 파시즘 사회가 우리에게 이뤄지는 동안, 그에 따른 댓가도 비례되어 커져만 갔다. 개인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못한채로 강요된 공동체 삶속에, 소중한 개개인의 진짜 삶은 경험하지 못한채로 나이를 먹는 바람에, 산업화를 넘어서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리고, 이제는 우주여행을 통해 계획의 일부가 누구에 의해 창조되었는지를 찾아보려는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현실화를 이뤄내는 동안, 오히려 우리 정신은 그만큼 빠르게 쇠퇴되어 갔다고 본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지내다 보니, 젊은세대는 젊은세대 대로, 기성세대는 기성세대 대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모르는 세태에 있다. 이곳에서는 획일화되고 짜여진 틀에 따라, 본인에게 좋은 것은 나중에 하려는 문화에 맞춰져 당시에 누려야하는, 우리가 매번 묻는 그토록 중요한 “나이”에 맞는 진짜 삶은 체험하지 못한다.
나이에 맞는 진짜삶은 무엇일까?
그걸 알려면 가장 먼저 나를 알아야한다. 내가 좋아하는게 어떤건지, 내가 두려워하는건 어떤건지 부터 눈치채야한다.
대부분의 우리는 타인 또는 사회의 트렌드에 따라 삶을 살아오게 된다. 어릴때 만나게 되는 공기놀이, 딱지치기, 학종이따먹기 등등 나의 경우에도 그 나이 친구들이 주로 하는, 그리고 그들이 좋아하는 놀이와 욕망에 맞춰 나의 욕망을 끼워 맞춘다. 거기에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왜 이걸 해야하는지도 모른체 무작정 학교내 친구들 문화에 맞춰 나의 가짜삶을 만든다. 역시나 집에서 홀로 다시 해보면 영 재미가 없다. 진정으로 재밌던건 아니였던 거다. 그보다 몇살 더 먹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중고등학교때 남아들이 해야할것, 여아들이 해야할것을 보고도 대부분의 친구들이 하는것을 따라서 하게된다. 어른이 되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모른다는것은 한마디로 서글프다. 이런 형태는 아주 사소하게도 식당의 메뉴 고르기에도 여전히 나타나기 마련인데, “아무거나 좋아” 라던지, “남들이 이거 맛잇대” 라던지 말이다.
그보다 더 어른이 됐을때도 그렇다. 와이프의 직업을 통해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기 마련인데, 어른들 또한 보건부나 구청, 관련 공단등에서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진 어르신 치매예방 놀이 등을 접할때 쉽게 흥미를 나타내는 어르신이 있는가 하면 보지도 않고 재미없어 하는 반응의 어르신도 있다고 한다. 그 어르신과 보호자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난후 그에 맞춘 대화와 놀이를 했을때는 매우 만족했다고 한다.
나를 알기위해선 먼저 내가 좋아하는걸 찾고, 시간가는줄 모르고 몰두하고 재밌어하는게 취미고 특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홀로 여행하거나 책을 읽는 등 사색을 하는 "여유"의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내가 나를 모르고 나의 내면은 쇠퇴된 후 남을 받아들일 순 없다. 다채로운 자아를 형성하고 좋아하는게 뭔지 싫어하는게 뭔지, 좋아했지만 싫증나 지는것도 받아들여보고, 싫어했지만 좋아지는 것도 받아들여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또 남들이 좋다고 한 것은 그들에게"만" 좋은 것이다. 남의 것이 내것이 될수 없듯, 남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될수 없다.
인생에 나중은 없다.
어렸을적엔 "대학가면 모든게 달라질거야" 라는 개념으로 학생들을 닭장안에 가둔다. 학생들은 착하게도 그 틀에 맞춰 자신이 당시에 경험하고 이뤄낼 대부분의 것을 포기하고 모든게 달라질 종착지인 대학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대부분이 경험했다. 다채롭지 못한채 대학을 경험하면 내 인생의 변화는 크게 일어나지 않는다는걸.
대학을 가보니 오히려 해야할게 많기만 하다. 그동안 못했던것을 압축해서 해내야 하기 때문인데, 대학가면 앞으로의 인생이 달라져야 하기때문에 바쁘게 이것저것 내 또래 선배, 친구들이 했던 좋아보이는것을 똑같이 경험해보려 노력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해야하는지 모르기에 여전히 유망한 직업이 뭔지 인터넷에 서칭하고 결국 답이 없으니 모두가 의대, 법대, 경영대에 몰두한다. 여전히 알 낳는 닭장이 다름없다.
졸업이후에는 상상한대로 이뤄지지 않는 나의 모습에 절망하고 그 위 레벨에 있었어야할 나를 위해 또다시 그 틀에 끼워맞추고 나를 갉아먹는다. 아직도 한참 멀었다. 내 상상속의 나의 멋진모습은.
그렇게 그 나이때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마음속 저 편에 밀어두고는 어렸을때 부터 줄곧 가스라이팅 당했던 것처럼 "나중되면 다 할수 있어"를 슬로건으로 내세운다. 그 슬로건을 이룩하기 위해선 혹여나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러다보니 이미 할게 많아서 하루하루 살기도 바쁜데 운동도 해야하고 늙지도 않기위해 할일이 산떠미다. 계속 그렇게 나중으로 미뤄둔 계획에 내 자아는 쇠퇴된다.
쇠퇴되는 나를 지키고, 진짜 나를 알기위해 나만이 알수있는 내 마음을 읽어낼수 있도록 노력하자.
늦지않았으니, 지금이라도 내가 좋아하는것을 찾아내고 내가 싫어하는것을 찾아내자. 나이들었는데도 하고싶었던 것을 하기위해 덤벙대고 허둥대고 하는 모습을 부끄러워 말자.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제라도 나의 내면에 집중하여 나를 알아내면, 남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있음에 그들을 쉽게 이해할수 있다. 그렇게 나와 타인을 소중하게 여기고, 나아가 동식물과 자연과 세상을 소중하고 평등하게 여길 수 있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서 멋있게 나이들었다 소리를 듣지 말고, 멋있는 사람이 나이를 들은 것으로 바꾸려고 노력하자.
인간이란 계획의 일부로써 그에게서 배제되지 않고 살아가도록 나부터 쇠퇴되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