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뭐든 익숙해지면 안정된다고 느낀다.
앞에서 말한 희-비극 상태에서도 표현된 불편함이 존재하지만 사회, 문화적 강요 속에 인간의 다양한 삶과 행복의 표현은 다수의 포기가 강요되고 그렇게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을 것이다. 마치 엘리베이터에서 다수가 뒤를 보거나 앞을 보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따라야만 안정되는 것처럼 그렇게 또다시 인간이 만든 작은 계획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요구된 안정은 진정한 안정인가? 사회 문화적으로 요구된 희-비극으로 보이는 무덤에서 요람까지의 K생태계는 나아가 사람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안정이라는 감정에까지 침투한다.
안정이라는 명목하의 누구에게나 유사하게 설계되는 삶의 형태는 인간 개개인의 자유의지, 자기 판단 등의 문제를 야기하고 개인들의 문제는 은폐시킨다.
"괜찮아 누구나 다 그래. 그냥 하면 돼"라는 다수의 안정화 틀속에 개개인의 안정은 무시된다. 그렇게 본인옷에 맞지 않은 미성숙한 안정틀을 쫒다 보면 결국 나의 안정틀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남에게 보일 틀은 다양하다. 학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결혼적령기로써, 임신가능성이 있는 나이로써 시기별 맞춰야 할 안정이 존재한다.
애써 자유의지를 조금 더 늘려본 이는 항상 불편하다. 왜라는 질문을 받기 마련이고 늘 자기의 뜻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일상에 봉착한다.
단순히 지금 내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안정단계에 이르고 싶지 않았을 뿐임에도, 나는 비혼주의, 딩크족 등 ##주의자 등 소위 별종으로 불리는 틀속에 갇혀진다. 모든 적령기에 맞춰 정석을 풀지 않은 나는 특이한 사람으로 치부되고, 단절되거나 차단되기도 한다.
단지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아"라는 나의 안정의지는 눈치 보며 결국 입안에만 머문다. 또한 틀에 맞춰 취업을 못하면 못한다고 돈 주고, 결혼을 못한다면 집도 싸게 지원해 주고, 애를 못난다 하니 애 낳으면 돈 준다 하는 등 각종 생활“안정”자금 이란 것으로 우리를 계속 입다물게 한다. (제발 내 세금으로 이런 거 주지 말고 아예 주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드는데 그 돈을 써보면 어떨까..)
과거에는 혈액형, 그리고 최근 MBTI의 한국형 해석과 같이 우리는 우리 스스로들을 대화하기 편하게 안정틀을 만들어 거기에 가둔다. E성향을 주로 갖고 있는 I성향의 인간이야 라는 진짜 mbti의 다채로움은 이해하기도 복잡하고 설명하기도 복잡하니, 그냥 한국에서 E는 E여야 하고 I는 I여야 한다. E가 I처럼 되는 날은 "너 왜그래, 무슨 일 있어?" 라던지, 심지어는 "그날이야?"라는 충격적인 단어도 듣게 된다.
현대에서 강요되는 다수의 사회문화적인 안정은 때때로 개인을 완벽주의 성향으로 만들기도 한다.
안정된 완벽한 틀속에서 어긋나는 건 손가락질받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기도 하기 때문에 개인의 안정화 속도와 방법은 잠시 무시하고 사회적 안정틀 속에 나를 끼워 맞춘다.
억지로 끼워진 틀에서 삐져나온 내 자유의지는 미성숙한 나로서 마치 물과 같이 틀속의 본체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나를 찾을 때 힘들어 화가 났는지 자기비판, 불안, 스트레스도 같이 데려온다.
과거 90년대 방송매체에선 찾기 힘들었던 정신과 의사들이 방송에 많이 출몰한다. 오박사 님은 금쪽이도 돌보랴, 성인 부부도 돌보랴 대체 주업은 언제하시는지 모를 정도로 시종일관 바쁘다. 매체를 보고 나도 한번 받아볼까 정신과를 예약하려면 바로 상담받기는 글렀다. 주위에 불편함을 겪는 이가 이렇게도 많구나를 느낀다. 이렇게 많은 수요 속에 또 사회적 스테이블을 유지하기 위해 구) 정신과 명칭은 이제 "정신건강의학과"로 바뀌어 더 많은 부적응자들을 치료하기에 이른다.
모든 것에는 인과라는 "그"의 계획이 있다. 그리고 작용 반작용의 법칙도 있다. 고로 안정에는 不안정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이런 기본계획에서 우리는 "그"의 계획의 일부로써 어긋나게 살아갈 필요가 없다. 어긋나게 살아봤더니 그로 인해 누군가는 피해를 받거나 나만이 살 수 없는 세상 속에 결국 불편한 것이 당연히 따라오더라.
최근 인스타그램 등에서 청소년기 학생들의 SNS를 비공개화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SNS를 통해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을 줄일 수 있게 하는 취지일 텐데, 우리 삶의 전반에서 다른 이를 위한 안정은 이제 내려놓고 진짜 나의 안정을 찾아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나와 모든 이가, 이번 주말만이라도 자유의지로써 安(편안하고) 靜(고요한) 나날이 주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