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14 PD 개인스터디
지이잉. 지이잉. 행정안전부에서 온 폭염주의보가 울렸다. 대통령의 핸드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봤다. 푸르른 공원같은 청와대와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이 보였다.
행안부에 있어서 폭염주의보는 우선순위가 높은 재난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수십명이 죽어나가는 세상에서 고작 날이 더운게 우선 순위에 오를 수는 없었다. 대통령이 폭염주의보 문자를 받았던 그날 역시 말로는 재난이 선포됐지만, 결코 재난이 아닌 평온한 날들 중 하루처럼 느껴졌다.
대통령은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폭염주의보 말이야. 전국 단위로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내게 보고 해주게."
"아 대통령님. 내일 오전에 보고드리겠습니다. 참.. 그리고 그 내년 총선에 대해 말씀드릴게 있는데..."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내가 얘기한 것부터 먼저 처리해주게."
장관들은 틈만 나면 자기 얘기를 하려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적 대화를 나눌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부분이 마음에 썩 들진 않았다.
대통령은 과기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번에 미세먼지용으로 인공강우 만들다 실패한거 어디까지 진행됐나?"
"네 대통령님. 인공강우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알겠네. 인공강우가 꼭 필요할 것 같으니 완성되자마자 나한테 보고해주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비서실장은 속을 태웠다. 외교, 국제 관계 개선이 시급한데 저런 사소한 일에 먼저 신경쓰는 대통령이 얄미웠기 때문이다.
영부인과 점심을 먹고 집무실로 돌아오는 길에는 해가 중천에 떠서 햇볕이 강하게 내려쬐기 시작했다.
"이젠 남자들도 양산을 써야되겠어요. 날씨가 이렇게 더워서야... 이젠 제주도에 상어도 나온다네요."
영부인 옆에 있던 비서실장이 대답했다."맞습니다. 양산까지는 눈치가 보여서 쓰기 힘들지만... 우리나라도 동남아 기후가 다 됐습니다. 그래도 절기상 대서 즈음엔 더운 게 자연스러운 거죠."
비서실장의 말을 들은 대통령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지이잉. 지이잉.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이번에는 폭염 경보였다. 대통령은 다시 창밖으로 공원을 바라봤다.
청와대 마당에서 토리가 헥헥거리며 뛰놀고 있었다. 더워서 뛰어다니는지, 신나서 뛰어다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비서실장이 슬그머니 옆에 다가와 보고했다.
"대통령님 폭염에 신경쓰실 때가 아닙니다. 지금 외교부 장관이 전화 대기 중입니다."
대통령은 핸드폰을 끄고 뒤돌아 봤다.
"대통령이 폭염에 신경쓰지 않으면 누가 폭염에 신경을 쓰나? 물론 대다수 국민들이 자네처럼 폭염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그렇지만 나는 말이야. 지금 우리 국민에게 외교보다 중요한게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라고 생각하네.
외교는 국가 대 국가의 일로 한 순간에도 해결할 수 있지만, 기후변화는 아예 해결이 불가능할지도 몰라.
비서실장인 자네 입장에서는 내가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는 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겠지.
그렇지만, 내가 해야할 일이 눈에 띄는 성과는 아닐지 몰라도 후에는 국민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네
비록 청와대 안에 앉아 보이는 것이 평화로운 공원일 뿐이지만, 목소리가 여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국민을 모른체 할 수는 없지 않나. 눈 앞에 있는 재난만 신경 쓰다보면, 우리는 토리가 아니라 회색 코뿔소가 청와대를 들이받는 모습을 보게될지도 몰라. 전화는 알아서 받겠네 그만 가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