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5 한겨레 신문 작문
다음 제시어를 보고 연상되는 바를 1인칭 화자를 내세워 쓰시오.
편의점에서 소주와 김밥을 샀다. 아침부터 햇살이 쨍하게 나를 비췄다. 휘청거리며 그늘로 가서 등을 기대고 앉아 빨간색 병뚜껑을 뜯었다. 그대로 한 병을 들이키다가... '아차 혼자서만 마시면 안 돼' 소주 병뚜껑에 술을 약간 따라 라벨에 붙어 있는 두꺼비에게 잔을 부딪힌다. 짠. 그대로 절반 가량 마시고 골아 떨어졌다.
빗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정확히는 카트가 굴러가는 소음에 깼다. 앞에는 노점상 카트를 밀어주는 일을 하는 김씨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비오면 장사를 할 수 없으니까 수 십개의 카트를 주차장에 넣어야 하는 김씨는 소음 따위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술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휘청휘청 거렸다. 그러면서도 소주를 다시 한 번 들이켰다. '소주 값이 오르는거 보니 나라에 망조가 들었구만'.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어귀에서 슈퍼 아주머니를 만났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그 곳을 비켜나갈 수 없어서 매번 잔소리를 들어줘야만 했다. 슈퍼 아주머니는 월세가 20에서 22만원으로 올랐다는 얘기를 늘어 놓았다. 들은체 하고 쪽방으로 들어와 몸을 뉘었다. '보잘 것 없는 삶이지만 천장이 있는 곳에 누워 있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라고 생각했다.
누워서 밖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다. 빌라에 살았던 97년도에도 집에서 빗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다른 쪽방에 사는 이들이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도 같이 들렸다. 발자국 소리가 멎을 때 쯤에 누군가가 문을 두들겼다. 이 쪽방에 문을 두들기는 사람은 경찰, 구청 공무원 그리고 부동산 업자 뿐이었다. 그 중 오늘과 같이 가장 조용하고 부드럽게 문을 두들기는 사람은 구청 공무원 뿐이다.
그는 내 방 앞에서 문을 두들겼다. 항상 같은 이야기를 해댔다.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서 사시면 얼마나 좋냐고. 월세도 안 내도 되고, 훨씬 좋은 삶을 보장 받을 수 있다고. 나는 그에게 말 한마디 꺼낸 적 없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는 나의 사업 이력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는 아마 그 경력으로 비춰 봤을 때 재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을 터다. 그러나 나는 이제 공무원을 믿지 않는다. 97년도에 공무원을 믿었다가 큰 실패를 맛봤기 때문이다. 대답을 않자 구청 공무원은 조용히 돌아갔다. 나도 다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몸이 가려워서 일어났다. 세수라도 하고 싶었다. 세면대로 갔더니 물이 나오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지나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월세를 냈다. 아주머니는 부동산 업자, 귀부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어서 월세를 내는 나를 본체도 하지 않았다.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아무리 비천한 신세라지만 사람이 돈을 내는데 이렇게 무시 하다니.
그 길로 편의점으로 가서 김밥과 소주를 샀다. 나오는 길에 학생을 비켜서려다 발을 헛디뎠고 그대로 편의점 앞에서 뒹굴었다. 김밥은 반쯤 떨어져 나가 땅에 굴렀다. 학생은 나를 잠깐 쳐다보더니 자기는 잘못 없다는 듯 편의점 내부로 불쑥 들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소주를 뜯고 병나발을 불었다. 반쯤 뜯어진 김밥도 꺼내서 한 입 물었다.
이윽고 아까 그 학생이 다시 돌아왔다. 그는 쪼그려 앉아 나에게 눈을 맞추고 그늘에 가 있으라고 했다. 땅에 떨어진 김밥을 치우고, 다시 와서 나에게 물었다. 실로 사람과 같은 높이에서 눈을 맞춘 것은 오랜만이라 정말 놀랐다.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 학생은 당황하여 급히 자리를 떴다.
학생이 떠난 자리에 나는 한참 앉아 있었다. 편의점 앞에 그대로 있었지만 출근하는 사람들은 익숙하다는 듯 나를 지나쳐갔다. 나도 어느새 그 지독한 무관심에 익숙해져 있었다. 경찰이 찾아와 나를 집으로 옮겨주었다. 집에 가는 길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폐업한 가게에서 자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보았다. '천장을 가릴 수 있는 집이 있으니 저들보다는 내가 낫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