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의 혼을 모시며
뿌리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는 사람,
신앙생활을 통해 삶의 참된 의미를 찾는 사람,
진급이나 승진을 통한 사회적 지위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는 사람,
여행을 통해
자신은 세상 속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일 뿐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으로서 자신의 의미를 찾는 사람.
이처럼 우리들은 각기 다른 외모만큼이나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찾아가고 있다.
이쯤 되면 문득 물음 하나가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나는 어떤 방법으로 나를 찾아가고 있을까.’ 이미 성인의 생활에 적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러한 물음을 가져봤을 것이다.
단지 그럴 때마다 ‘사는 게 다 이렇지.’, ‘일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그런 고민은 해봐야 뭐 하겠어.’라는 생각으로 고개 든 물음을 가벼이 덮어 버렸을 것이다.
덮어 버린다고 썩어 없어지는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이 원초적이고 중후한 물음은 잊을만하면 다시 고개를 든다,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을 때까지.
그러니 우리는 답을 찾아 삼만 리든 사만 리든 헤매야 한다.
설령 불행하게도 헤매다 생을 마감해야 할지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비록 끝내 나를 찾지 못 한 채 죽음을 맞이할지언정 나를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나를 찾는 것을 외면한 채의 삶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봤을 때 더없이 허망하고 초라할 게 빤하기 때문이다.
한여름의 뙤약볕 밑에서 중노동을 하든 시원한 에어컨 바람으로 냉방병에 시달리며 사무를 보든 주어진 하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똑같이 흘러가듯이,
이 물음 또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매일같이 일말의 흐트러짐도 없이 찾아와 미련 없이 흘러가는 하루가 소중하듯,
기별 없이 찾아와서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사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 물음 또한 소중하다.
그래서 나는 틈만 나면 고개를 드는 이 물음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찾기 위해 바람직한 방법을 이용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과연 내 인생의 종착지는 어디쯤에 있으며, 거기에는 무엇이 있을 것인가. 도대체 나는 내 인생의 종착지에 무엇이 있을 거라 기대하며, 오늘도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사색에 잠기게 되면, 몇 가지 물음이 가지를 치듯 연이어 떠오를 것이고, 그것들 각각은 또 다른 물음들을 가없이 생성해 낼 것이다. 그러다 결국,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물음들로 두통에 시달리게 될 지도 모른다.
이것은 우리에게 객관식 문제의 보기들이 전부 답인 것 같아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고심할 때 동반 되는 두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고통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풀어내야 할 물음이기에,
우리는 이와 함께 수반되는 두통을 감수해야 한다.
인생은 두통의 연속이라 했던가,
어쩌면 이 원론적인 물음을 풀어가며 사는 것이 곧 인생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인생, 뭐 별거 없다.”며 걸어온 삶을 비관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인생, 별것들로 가득하기에 다시 한 번 살고 싶은 것.”이라며 지난 삶을 낙관하기도 한다.
나는 삶을 낙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나를 찾는 여정’은 삶의 끄트머리에서 마지막 숨을 내뱉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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