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싶을 때
말이 무력함을 알아 차리고,
누군가에게 화를 낼 때는
말의 위력에 놀라곤 한다.
성난 가슴에서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온 말은 곧 비수가 되어 상대방의 염통에 꽂힌다, 가차없이.
상대방이 보이지 않는 비수를 피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 그냥 그대로 맞을 수밖에.
슬프게도 한 번 가슴에 꽂힌 비수는 다시 거둘 수도 뽑을 수도 없다. 그러니 누구든지 꽂힌 채 몇 십일이고 몇 십년이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꽂힌 비수가 염통의 완전한 일부가 될 때까지.
쿵쾅거리며 쉴 새 없이 뛰는 심장은 생기를 온몸에 불어넣지만 심장의 열기가 닿지 않는 비수는 언제까지나 서늘하다.
시퍼런 비수는 서글프다.
우리는 지금껏 그렇게 제 몸처럼 받아들인 비수가 몇 개인가.
또한 살면서 더 체화해야할 비수는 몇 개나 될까.
한 번 꽂힌 비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심장에서 비수가 차지하는 영역은 자연스럽게 확장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비수의 고통에도 갈수록 무뎌질 수밖에.
하지만 높아진 고통의 역치에 익숙해져 덩달아 남들에게까지 비수를 쉽게 날려서는 안 된다.
자신이 놀랐거나 후회했거나 아팠다면,
그래서 깨달은 게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될수록 같은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비수들 속에 살며 말의 무게를 서서히 체득해 간다.
그렇게 오늘도,
심장에 꽂혀 있던 오래된 비수 하나가 나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믿는다, 나의 인품도 그 비수의 무게만큼 중후해졌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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