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리 길

by 러브런치

때는 아직 추위가 한창인 설이었고,

저는 서울이었습니다.

목표한 취업을 위해 서울에서 자취하며 공부한 지 이제 막 2년 차가 되었을 때입니다.


나 하나 보겠다고, 우리 아들 얼굴 한 번 보겠다고 고향에서 천 리 길 달려오신 아버지 등에는 내 몸집보다 큰 가방이 들려 있었고, 평생 힘든 동으로 얻은 후유증 때문에 저시는 발은 짐 때문에 더 휘청거렸습니다.


어머니의 두 손에도 역시 아들 먹일 음식이 한짐 들려있었고, 함께 온 동생은 자신의 등과 두 손에 가장 무거운 짐이 들려 있으면서도 부모님 짐을 모두 대신해 들지 못했다는 마음에 미안했는지 머쓱하게 웃었습니다.


명절과 휴가철을 제외하고는 일 년 내내 주말도 못 쉬고 일하느라 전날까지 힘겨운 노동에 시달리셨을데...

고작 며칠뿐이지만 하루를 온전히 쉴 수 있는 명절마저도 나 하나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생고생을 하신 겁니다.


반가움에 웃었지만, 가슴으로는 울었습니다.


우리는 명절 연휴 이간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영화도 보고, 경복궁도 가봤습니다.

상 펼 공간도 없고 냉장고를 열 때마다 문 앞에 앉은 한 명이 일어나야 할 정도로 좁은 공간이지만 방바닥에 둘앉아 함께 삼겹살도 구워 먹었습니다. 군대에 가 있는 막둥이가 없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모처럼 아늑했습니다.


하지만 질투가 많은 시간이 우리 가족의 특별한 순간을 서둘러 과거로 넘겨버린 건지 눈 깜짝할 새 부모님께서 내려가셔야 하는 날이 되었고, 저는 용산역에서 부모님을 배웅했습니다.


기차 시간이 임박하자 조심히 내려가시라고 인사하는데...

그 순간 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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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 잦아들 눈물이 아니라는 걸 알았던 저는 서둘러 인사를 마치고 등을 돌렸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공간에서 눈물로 턱을 적셔본 건.


북받친 감정을 겨우 달래고, 왜 그렇게 울음이 나왔는지에 대해 잘 생각해봤습니다.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날은 추위가 서린 설이었고, 부모님은 나를 보기 위해 무거운 짐을 들고 천 리 길을 오셨다는 사실만 끊임없이 머릿속을 떠돌 뿐이었습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내가 내려가야지. 다시는 나 하나 때문에 괜한 고생하시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말입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의 여유를 더욱 빠르게 잃어버리고 있는 사람이단 저뿐만은 아닐 거라 여깁니다.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취업과 관계없는 모든 삶을 미루고, 치워 버리면 불행해지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입니다.


쉽지 않을 거 알지만

우리, 조급해도 주위를 살피면서 도리를 다하며 삽시다.


취준생도 손주이고, 자식이고,

형 오빠 누나 언니 동생이잖습니까.


나도 그대도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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