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시작
누군가가 말하길, 3월은 새해의 세 번째 시작이라고 하더라. 첫 번째가 1월 1일 신정, 두 번째가 설날이라고 한다. 3월이 세 번째 시작인 이유는 입학이나 개학 시즌이기도 하고, 사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봄이 찾아오는 시기라서 그럴 것이다. 때문에 새해의 시작이 원활하지 못해도 기회는 더 있으니 너무 좌절하지 말라는 말이 퍽 위로가 됐다.
뭐든 시작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항상 새로운 일이나 경험을 처음으로 받아들일 때는 제법 낯섦을 느끼지 않는가. 또한 꾸준함이 뒤따라야 할 텐데, 그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시작한 게 잘 지속되지 않으면 처음부터 꼬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매번 다짐하는 새해 목표의 성취율이 낮은 것도 이에 기인하지 않나 예상해 본다.
우리는 매번 새해에 달성할 얼마만큼의 목표치를 정하고, 스트레스받아가며 그걸 이루려고 발버둥 친다. 기본적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능력을 키워 성장하고픈 본능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본능은 어느 순간 의무감, 사명감이라는 옷을 걸치고 ‘~하고 싶다’에서 ‘~해야만 한다’로 변질한다. 어느 정도의 변화는 동기 부여의 차원에서 더할 나위 없으나, 의무감이 자부심을 역으로 추월하는 순간 자신을 갉아 먹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런지 3월은 유달리 주변에 힘들어하거나 아픈 사람이 많았다. 1월 1일이 되기 전에 세운 목표를 여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며 올해는 망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자신을 찾는 데 시간을 평소보다 더 쓴 사람도 있었다. 나도 아주 연관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게, 이미 당초 세워 둔 올해 계획 중 여럿이 꼬였다. 사실 나는 고통을 자초했다는 게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굳이 안 해도 될 고생을 찾거나, ‘적당히’라는 걸 모르고 더 나대다 몇 배로 반동을 얻어맞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이것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이렇게 쌓아둔 ‘경험’이 어떤 보석이 되어 내게 돌아올지는 나도, 타인도,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시작을 맞이해, 나는 끊임없이 내 몸과 정신을 찢었다. 대충 어림해 계산해 봐도 이틀에 한 번꼴로 아팠던 것 같다. 온몸이 움찔거리며 제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신을 몇 번이고 원망했다. 그 아픔을 천천히 치유하면서, 담금질하듯 꾸준히 심신을 길들였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내일이 더 기대되는 일상을 보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난 뒤에는 어떤 새로움이 찾아와 있을까? 헛물켠 날도 있지만 이따금 오는 봄 편지 같은 소식은 괜스레 나를 설레게 했다. 아, 나는 이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부단하게 나를 단련시킨 거구나. 이거이거, 아프다고 괴로워할 틈이 없겠는걸? 요즘은 감정의 연소를 그렇게 이겨내지 않았나 싶다.
당초 예상한 대로 4월은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새로움이 한가득 피어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두 번째 시작보다 더 다채로운 세 번째 시작을 통해 고통에서 조금 멀어지려 한다. 3월에 유독 아팠던 모든 이들의 세 번째 시작 또한 그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