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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 May 15. 2023

기획자 4년 차, 이제 회사 대리쯤 되나?

내 기획자 커리어는 2020년부터 시작한다. 처음 업계에 발을 들인 것도 우연에 의해서였다. 그저 재밌을 것 같다는 이유로 지원한 공모 사업이 최종 합격까지 갔고, 뭐든 하고 보자는 마음으로 신청한 기획자 양성 교육을 수료하며 커리어의 스타트를 끊었다. 그냥 그때 하던 것들만 하고 말았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텐데, 괜히 기획자라는 직업에 맛 들여서 여태 꾸준히 프로젝트와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적어도 내세울 만한 직업이 됐다는 데서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역문화진흥원은 매년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사업'을 운영한다. 전술한 기획자 양성 교육인데, 울산은 2023년 기준 7년 차를 맞이했다. 나는 2020년 4기 수료생으로, 기획의 '기' 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흥미 하나만 가지고 교육에 참여했었다. 4기는 전 기수와 달리 코로나의 확산 이후로 운영된 기수다 보니 교육도 뭔가 후다닥 끝난 느낌이었다. 전 기수는 다 갔다는 선진지 견학도 못 가고, 사람 많이 모이면 안 되니까 팀으로 나뉘어서 활동하고, 그러다 보니 다른 팀 동기들이랑은 얘기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해보고… 그래도 기획자 동료들을 많이 만나고, 기획에 대한 여러 가지를 들은 자리라는 의의는 있었다.


이후 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울산의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사업' 7기수 교육생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이번에는 기 수료생도 신청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획에 대해 전혀 모를 때와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뒤 듣는 교육은 뭔가 다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동안 울산의 문화 업계도 많이 바뀌었다. 울주군에 독립적인 문화재단이 생기고, 울산문화재단은 관광재단과 통합돼 울산문화관광재단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2020년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 청년 기획자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까지 활동하는 이들은 몇 남지 않았다. 이렇게 변화하는 지역 문화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성장해야 함을 인식했다.


7 교육을 신청하고 면접을 봤다. 재단 관계자들은 사전 접수할  제출한 프로필을 보고 "경력이 화려하시네요?"라고 운을 뗐다. 서당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4  기획자에 걸맞커리어를 쌓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느꼈다. 이어 예상했던 질문이 들어왔다. "이미 기획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교육에 신청하신 이유가 있나요?" 이유는 내게 너무도 명확했다.   사업과 프로젝트를  보고 싶어서.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역량 강화와 함께할  있는 기획자 동료가 필요하다고.


숱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면접을 보며 느낀 바지만, 면접관들도 결국 사람이다 보니 자신이 동조할 만한 이야기가 나오면 리액션이 달라진다. 몇 차례 고개를 끄덕인다거나, 짧게 감탄사를 내뱉는다거나. 프레젠테이션이나 질의에 대해 응답할 때 어느 부분에서 면접관들이 혹할지 파악하는 눈이 생겼다. 그 포인트를 힘주어 어필하면 예상한 반응이 흘러나온다. 그러한 반응이 길어지거나 많아질 때 대충 직감한다. '면접 잘 봤다.'


확실히 4년 차 정도 되니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괜스레 우쭐해 기획자 동료에게 "이제 4년 차 기획자니까 회사 대리 쯤 될까요?"라고 물었다. 동료가 말하길, "'대리=일 잘하는 말단'이니까 과장을 목표로 합시다." 그 말을 들으니 제법 많이 왔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이렇게 허구한 날 기획만 해서 언제 작가가 될까 싶다. 올해 들어 기획자는 작가라는 직업을 부각시켜줄 수단에 불과하다는 걸 자각했다. 그럼에도 작가라는 직업에 더더욱 경쟁력을 부여하기 위해, 나는 아마 꾸준히 기획을 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2주 뒤에 모교 특강 일정이 잡혔는데, 올해는 기획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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