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하지 않습니다 - 돌연변이 국문학도의 생존방식' 특강 후기
작년 10월, 울산광역시청 사업 자문회의를 통해 오랜만에 대학 선생님(내가 졸업한 모교 학부는 교수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과 재회했다. 그때 드렸던 내 명함이 손을 타고 타서 한 선배님으로부터 연락이 오기에 이르렀다. 자신을 95학번이라고 밝힌(선배님인지, 선생님인지는 애매하지만) 선배님은 국문주 기간 동안 졸업 선배의 특강을 열 계획인데, 시청에서 나를 만난 선생님의 추천으로 연락했다고 하셨다. 국문주는 한글날 전후로 약 3일 간 진행하는 국어국문학과의 축제로, 나름대로 꾸준히 진행 중인 학과 내 권위 있는 행사였다. 한창 커리어를 쌓는 시기였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그렇게 약 5년 만에 학교에 가게 됐다.
이때의 자세한 내막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tkdgns1129/3
당시 강의를 잘 마치고, 그래도 평이 썩 나쁘지 않았는지 연락을 주신 선배님으로부터 또다시 특강 요청이 왔다. 작년에는 학과 축제라 선배와의 대화 컨셉으로 뭔가 내 자랑만 실컷 하고 온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고학년을 대상으로 했기에 어느 정도 진로 설정과 연관된 이야기도 해야 할 터였다. 문송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국어국문학과에게 취·창업은 타 학과보다 더 심층적으로 탐구해야 할 문제였다. 옛날부터 선생님들도 이에 대한 인식은 하고 있으셨는지, 대학 4학년 때 '취업 국어'라는 과목이 개설됐던 기억이 남아 있다.
강의 시작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과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우연히 다른 선생님 한 분을 간만에 마주했다. "너 되게 오랜만에 온 거 아냐?" "예, 선생님 강의 마지막으로 들은 게 10년 가까이 되죠." 학과 생활을 충실히 한 것도,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한 것도 아닌 제자를 여태 기억해 주시는 게 신기하고도 감사했다. 이어 선배님을 만나 연구실에서 짧게 담소를 나눴다.
선배님은 내가 재학생일 당시에는 서울대에서 연구원을 했다고 하셨다. 내가 졸업한 뒤에야 모교로 돌아와 후배들을 양성하는 중이라고 하셨으니, 그제야 여태 선배님을 전혀 몰랐던 게 설명됐다. 선배님은 '후배님은 구체적으로 하는 일이 뭐예요?'라고 물으셨다. 자타공인 국문과 돌연변이니 의문이 들 법도 했다. 무엇보다도 나 또한 아직은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에 있으니, '그게 될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선배님과 '글쓰기'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는 후술하겠다.
그리고 강의실로 이동해 30명 조금 넘는 후배들 앞에 섰다. 고학년들이니 아마 20학번 전후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략 10년의 세월 차가 있는 어린 친구들. 그들에게 아직 취·창업이라는 건 먼 세상 이야기일 터였다. 나만 해도 그랬으니까. 실제로 대학생일 때는 취업 준비보다 대학생인 신분을 이용한 대외활동이 더 많았고, 심지어 졸업한 뒤에도 당장 취업할 생각이 없었다.
어쨌든 선배님께서 내게 부탁한 것 또한 '후배들에게 이런 길도 있다는 걸 알려달라'는 게 주요 요지였으니, 나름대로 지금껏 쌓아 온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했다. 강의 경력을 어느 정도 다졌으니 진행에 큰 무리는 없을 거라 판단했는데, 지금껏 해온 강의와는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었다. 바로 놀라울 만큼 무미건조한 수강생들의 반응. 뭐 그래도 나 또한 그 나잇대에 그랬으니 충분히 이해되는 반응이다.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색깔 없는 강의를 하는 건 내가 싫어서, 꺼낼지 말지 망설였던 팀 빌딩 콘텐츠를 강의 중간에 약식으로 진행했다. 즉흥적으로 6-7명의 조를 구성해 조별로 토의하고 발표하게 했다. 처음엔 다들 이게 뭔가 하고 웅성웅성하더라. 그 중에는 "아~ 이거 아닌데"라는 말도 들려왔다. 내가 그렇게 강의하겠다는데 어쩌리. 그래도 조별로 콘텐츠를 활용해 토론케 하니 점차 분위기가 활발해졌다. 어느 정도의 도박은 성공한 셈이다.
그들 앞에서 내가 해준 이야기들은 전체적인 맥락을 봤을 때 △내가 가진 것과 하고픈 것의 파악 △돌연변이의 돈벌이 수단 △취·창업 시장을 들여다보는 법 정도가 되겠다. 그들이 정말 '문송하다'고 일컬어지는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라면 그래도 피와 살이 될 만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알 만한 단어나 개념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으니, 더더욱 단언할 수 있다.
강의를 마치고 선배님과 대화를 나눴다. 서울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모교의 애정을 위해 내려왔지만, 고민이 많다고 하셨다. 수업 전 이야기한 '글쓰기'의 학문적 범위에 대한 것부터, 학생들을 향한 지도 편달까지. 선배님은 '하나에 미친듯이 열정을 가지고 쏟아붓는 친구들이 없다'고 하셨다. 조금 유감스러운 말일 수 있으나, 강단에 서서 내려다본 후배들은 대학생이라기보단 고등학생 같았고, 생기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모두가 그랬다는 건 아니지만, 뭔가 이들은 아직까지 사회에 나가는 걸 남일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코로나 세대라 고학년이어도 서로 마주한 지 1년이 채 안 되니 동기 사랑도 이제는 옛말이 됐다고 한다. 여러 모로 현 세계의 흐름들이 빚어낸 현상이 아닐까 싶다. 뭐 솔직히 말해서 내 입장에서는 좋은 게, 일찍이 이런 사회 현상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계속 시대에 역행하는 구조로 극복 방안을 고려하고 있지 않나. 즉 나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이고 내가 하는 일의 시장은 더 커질 것임을 방증하는 현상이다. 선배님의 이야기처럼 '글쓰기가 점점 교육적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적 기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매번 하는 강의들이 다 그렇지만, 이번 강의도 내게 좋은 경험이었다. 앞으로의 행보를 일깨워 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