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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 Aug 06. 2023

나의 프리랜서 일대기①

시작부터 1년차까지

보통 대학생이라면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이 대체로 아르바이트일 것이다. 사실 아르바이트와 프리랜서의 경계는 모호하다. '학생이나 직업인이 본업 이외의 수입을 얻기 위해 하는 일'이 아르바이트의 본래 정의라면, 프리랜서는 개인 사업자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두 개념을 가르는 지표 중 하나로 '개인의 전문성 포함 여부'를 제시하고 싶다. 요컨대, '나 아니라도 할 사람 많은 일'이 아니라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 프리랜서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라는 틀에서 벗어나 개인으로 처음 수익을 내 본 시절을 떠올려 보면 대학생 때가 시초였다.

대학 4학년 당시 방과후 교사로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었다.

대학생 시절, '뮤지컬 만들기'라는 음대 교양 수업을 들은 적 있다. 조별로 기본적인 극의 시놉시스만 제공받고 춤과 노래·연기를 특색 있게 구성해 보는 수업이었다. 여러모로 나와 잘 맞는 수업이었다. 대학생 당시에는 버스커이기도 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액티비티한 수업이라 노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즐기면서 임했기 때문인지 학점도 A+를 받았다.


종강 이후 수업을 담당한 음대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뮤지컬을 가르칠 방과 후 교사를 찾고 있는데 할 생각이 있냐는 거였다. 배정된 학교가 집에서 왕복 3~4시간 거리인 데다 4시간 동안 4개의 클래스를 진행하는 제법 강행군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일을 해볼까'라는 생각 하나 때문이었다. 아이들과 함께한 6개월이라는 시간은 여전히 특별했던 순간으로 남아 있다.

문화재 지역 주민공감 정책 '병영 습격사건' 프로그램에서 포졸 분장을 하고 아이들 인솔을 맡았다. 어쩌면 이때부터 문화기획자의 길에 들어설 운명이었을지도.

또 대외 활동을 통해 알게 된 문화예술단체의 프로그램에 운영 보조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때는 문화 기획에 대한 꿈은커녕 문화 기획이라는 개념조차 모르고 살았는데, 어느덧 문화기획자로 버젓이 활동하고 있으니 사람 일이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같다. 같이 일했던 선생님들이 알고 보니 업계에서 거물이라는 것도 당시의 내겐 알 길도 없었을뿐더러 중요하지도 않았다.


졸업반일 당시에도 취업에 대해 그리 절박하진 않은 편이었다. 대학생일 때 이처럼 재밌는 것들을 계속하고 다녀서일까. 좀 더 많은 경험을 해서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재밌는 일을 하면서 돈 버는 법'을 미처 떠올리지는 못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아마 내 커리어는 더 빨리 시작되지 않았을까.

돌고 돌아 내 커리어의 시발점을 만들어준 단체, 「글쓰기 모임 W」

학업을 마친 뒤에는 모든 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늘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메웠다. 어느 직장을 다녀도 만족스럽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다. 몇 번의 이직을 하며 조직 생활에 피로감을 느낄 때쯤에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였지?'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아, 나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 생각이 들어 시작한 게 지금 내가 운영 중인 작가 커뮤니티, 「글쓰기 모임 W」이다.

지금이야 외적인 인지도를 갖춘 문화예술단체가 됐지만,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큰 단체로 키울 생각은 없었다. 같은 취미 생활을 가진 시민들끼리 모여 소소하게 글을 공유하는 동아리 같은 개념을 생각했다. 어떻게 운영해야 사람들이 더 흥미를 느끼고, 지속 가능한 모임이 될까 늘 고민했다. 그런 고민의 시간이 아주 헛되진 않았는지 조금씩 사람들이 유입되며 커뮤니티가 커졌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프로젝트를 만나게 된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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