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었지만, 날 위한 시간이야
12월의 첫날은 산뜻하게 시작했다. 기사 써서 원고료나 벌자는 심산으로 참가한 대회에서 덜컥 1등을 해버려, 올해 투두리스트의 마지막 한 줄을 추가한 건 고무적이다. 올해 마지막 기획 프로그램과 강의도 잘 마쳤다. 마지막 달이라서 그랬다기보다는 12월의 활동이 제법 아늑하게 남았다. 평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시도해 본 것도 있고, 나도 조금 내려놔서 편했달까.
앞서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내가 한 달에 내는 월세가 얼만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응당 집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 난 왜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걸까.” 흔한 직장인의 ‘퇴사하고 싶다’는 자조가 반농담 정도 들어간 말이었는데, 그에 걸맞게 이달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예달보다 많이 가졌다.
특히 한창 추울 때는 집 밖에 나가면 온몸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름이 좋아, 겨울이 좋아?’라는 질문을 받을 때 내 대답은 늘 한결같다. “난 겨울이 정말 싫어. 차라리 여름이 낫지.” 겨울이 절정에 다다를 때마다 몸을 웅크리고 수동적으로 변하는 내가 싫어진다.
아무래도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보니 회포를 푸는 자리도 종종 생겼다. 이제는 일부러라도 그런 자리를 찾아갈 필요를 느낀다. 남들과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를 해본 게 언제던가. 나이가 찰수록 만나는 사람들이나 말의 경중에 대한 각자의 형태가 조금씩 갖춰진다. 점점 가벼운 이야기를 하는 게 나라는 사람 자체를 비추는 사례가 되지 않을까 괜스레 두려워지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quwYM7nM9bs&t=396s
그럼에도 이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관계 형성의 기틀이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내공은 매번 쌓아가고 있으니, 그 안에서 어렵게 보이지 않게 나를 드러내는 방법을 계속 연습한다. 대놓고 다가와 달라는 워딩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사람이 스미며, 심지가 곧은 인간상이 몸에 배게끔 언행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다.
마치 에필로그 같은 한 달이다. 물론 이제 해가 바뀌니 아주 틀린 정의도 아닐 거다. 1년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나에게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너무 늦진 않았을지 걱정도 됐다만, 다행히 길을 완전히 잊지는 않은 모양이다. 더 나를 챙기는 데 집중하고 산뜻하게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